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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의 약점

사람의 장점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장점이 도리어 자칫하다간 보통 사람들과 거리감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여기에 비해 결점이나 실책은 사람을 가깝게 해준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에 대한 상원에서의 증언으로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다. 그럼에도 클린턴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한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취임했던 때의 미국 언론들은 그의 식성, 취미 등 생활의 모든 면을 샅샅이 들추어 낸 적이 있다. 당시의 한 신문기사에는 클린턴이 사냥칼을 수집하고, 피노클 카드놀이를 좋아하고, 빈칸 글자넣기놀이를 즐긴다고 적고 있다. 또 다른 신문기사는 그가 애독하는 책으로 모슬리의 추리소설과 톨스토이의 소설이라고도 했다. 또 게리 쿠퍼가 주연한 서부극 「하이 눈」을 무려 19번이나 즐겨 관람했다고 전한 바 있다. 클린턴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좋아하고 햄버거와 도너츠, 그리고 코크를 좋아한다는 얘기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기사거리들은 클린턴과 보통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좁혀주기에 충분하다.우리는 그간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 그저 아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카리스마적 지배를 위해서 얼마나 위대한 사상과 철학이 있고 그의 성장과정이 얼마나 남달랐던가를 열심히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에게는 뭔가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인식을 심는데에는 나름대로 성공한 대통령들이었다. 또 그렇게 해서 대통령으로서 통치하는데 그런대로 통한 바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대통령 자리를 물러설 때는 그들이 자랑하던 장점들은 모두가 허상이었음이 드러났고 국민과는 먼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만약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골프 솜씨가 엉망이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노래솜씨가 음치수준이며 김영상 전 대통령의 뜀박질 수준이 그저 그만한 정도였다면 자못 국민과의 거리감이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대통령의 외환위기 초래의 책임을 묻는 청문회 참석여부를 놓고 국회와 전직 대통령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진솔한 답변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웬만한 사람은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을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는 곰팡이내 나는 구각을 벗어던지고 싱싱한 휴머니즘의 풋내를 풍겨준 동토에 여린 새싹을 돋게 하는 것같은 감동을 준 영화다. 그러나 영화 뿐만 아니라 헵번은 실제로 그렇게 인생의 말년을 보냈다. 그래서 그 무렵 젊은이들간에는 헵번주의라 하여 기존의 도덕, 체제나 가치관에 구애받지 않고 위선하지 않으며 없으면 없는 그대로, 못났으면 못난 그대로, 모르면 모른 그대로 진솔하고 신선하게 사는 태도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전직 김대통령은 헵번에게서 가장 소중한 인생의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약점일지 몰라도 국민과의 거리감을 좁혀 줄 것이다. 커다란 눈만 우리의 뇌리에 남겨 놓고 떠난 헵번의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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