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결산법인들의 주주총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자산운용사들이 거수기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장사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대부분 찬성표를 던지며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연초 이후 이달 13일까지 한국거래소에 등록된 '집합투자업자 등의 의결권행사' 공시 576건을 분석한 결과 자산운용사들은 총 2,022개 안건 중 무려 98.2%인 1,985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의견은 18건(0.8%)에 불과했다. 사실상 의결권을 포기하는 중립 의견은 14건, 불행사는 5건이 나왔다.
대다수 자산운용사는 상장사들이 제출한 '재무제표 승인의 건' '이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 등 주총 안건에 대해 "주주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없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찬성 의견을 냈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등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운용사들은 삼성전자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에 대해 모두 찬성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14일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기존 380억원에서 480억원으로 100억원 올리는 안건을 상정한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관계자는 "글로벌 기준과 장기성과를 고려한 것으로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해 찬성 의견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베어링자산운용도 한진해운의 전용선사업 양도 건에 대해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들어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운용사들이 반대 의견을 낸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다.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은 포스코가 주총 안건으로 올린 선우영 법무법인 세아 대표변호사와 안동현 서울대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측은 "선 변호사는 2008~2012년 삼환까뮤의 사외이사직을 수행했지만 최종 3년간의 평균 출석률이 63%에 불과했고 안 교수는 2004~2006년 오디코프의 사외이사를 역임했는데 3년간의 평균 출석률이 26%로 매우 저조했다"며 "포스코의 사외이사 업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할 우려가 커 의결권 반대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베어링운용이 현대해상의 김호영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 의견을 낸 것과 한화자산운용이 삼광글라스의 조동석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것 등이 그나마 운용사들이 목소리를 낸 사례들이다.
전문가들은 운용사들이 의결권 행사에 대해 소극적인 데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굳이 피력할 만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운용사들의 상장사 보유 지분율이 국민연금 등 다른 연기금에 비해 크지 않아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안건 통과를 좌지우지할 수준이 못 된다"며 "어차피 반대의견을 내봤자 묻히고 말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주총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러스톤자산운용과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만도가 신사현 이사를 재선임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을 냈지만 만도는 결국 주총에서 신 이사를 재선임했다. 운용사가 목소리를 냈지만 힘만 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어 "통상 주주총회 안건도 주총 20일 전에 전달돼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고 전문 분석 인력도 부족해 운용사들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운용사들의 주총 거수기 논란은 해마다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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