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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문제」소유­경영 분리 계기로/최정표 건국대 교수(서경논단)

한국의 여덟번째 기업그룹인 기아그룹이 파산의 위기를 맞았다.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어 일단 부도는 유예되었지만 회사는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기아 사태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이 혼란에 직면하고 협력업체들이 연쇄도산의 위기에 처했다. 기아그룹의 규모가 큰 만큼 그 여파도 대단히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금년들어 기아 이외에도 이미 한보, 대농, 삼미, 진로등 내로라하는 대기업그룹들이 똑같이 파산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기아사태는 이들 기업그룹의 파산 위기때와는 전혀 다른 국민적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기아살리기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시민운동단체까지 기아살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회사가 경영을 잘못해 망하게 되면 그 회사 스스로가 책임질 일인데도 기아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기아살리기 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아는 재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재벌문제가 하나의 커다란 경제 문제로 대두되어 왔었다. 재벌이란 한 개인과 그 친인척이 절대적인 주식지분을 소유하면서 경영권을 장악하고 다시 이를 세습시키는 대규모 기업그룹을 지칭한다. 쉽게 말하자면 재벌은 족벌소유와 족벌경영및 이의 세습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재벌들이 파산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국민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런데 기아그룹은 이런 재벌과 다르다. 소유가 철저히 분산되어 있으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고, 자동차 생산에 전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어느 개인이나 가족이 기아를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기아는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선진형 기업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기업이 파산의 위기에 처하게 되니 많은 국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기아돕기 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아를 돕는 것은 기업을 돕는 것이지, 어느 개인 부자를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재벌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재벌을 돕자고 나선다면 그건 바로 그 재벌의 소유자를 돕는 것이 되기 때문에 국민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기아가 오너 경영이 아닌 전문경영인 기업이기 때문에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기업은 어떤 지배체제를 가지든간에 망할 수 있고 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너경영 체제의 대재벌이었던 한양, 우성, 대농, 한보, 삼미, 진로 등은 이미 망했거나 파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떤 대기업그룹이 망한다면 그것은 오너경영의 재벌이다. 그러므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기아가 이런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기아그룹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선진국형 기업이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외부적 형태는 선진국형 구조를 갖추었는데도 경영구조의 실제적인 작동은 재벌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재벌의 가장 중요한 단점이 오너경영자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너의 전횡이 거의 무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오너외에는 결코 누구도 최고 경영직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경영층에는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전문경영인 지배체제의 장점은 경영능력이 가장 우수한 사람이 경쟁을 거쳐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고 또 이 최고경영자의 경영활동이 적절히 감시되고 견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선진국의 대기업에서는 이러한 장치가 잘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회사경영이 잘못 되었을 때는 일이 더 악화되기 전에 이를 수습하는 일에 나설 수 있다. 그런데 기아그룹은 외부적 형태는 선진국형인데도 실제 내부장치는 선진국형으로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 재벌과 비슷한 측면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경영자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었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이런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이 오기 전에 이미 적절한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최고경영자는 이미 그 책임을 져야 했었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를 감독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소유구조가 아무리 선진국형이라고 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기아그룹은 오늘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과 정부의 성원속에 스스로 보란듯이 회생하여 소유경영 분리체제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기아가 다른 재벌에로 넘어간다면 이는 최악의 결과이며 한국 기업의 선진화를 수십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제약하는 커다란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약력 ▲52년 경남 하동 출생 ▲미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미워싱턴―제퍼슨대 경제학과 조교수 ▲세종대 경제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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