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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본연의 경쟁력'과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롭게 출발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앞길이 순탄치 않다. 취임과 함께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위대한 포스코(POSCO(005490) the Great)'를 이뤄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시작부터 '외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로 수천억원대의 추징금을 물게 생겼고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도 등 떠밀리듯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권 회장 취임 초부터 '포스코 길들이기'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스코는 그동안 정권에 따라 외압에 시달려왔다. 정준양 전임 회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 전 회장은 임기 중 인수합병(M&A)에 무리하게 나서며 2011년 계열사를 70개까지 늘렸으나 충분한 검토 없이 확장에만 나선 탓에 부실이 드러난 곳이 상당수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다.
대표적인 곳이 플랜트 업체인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이다. 성진지오텍은 철강업종과 관련 없는 석유화학 및 원자력 핵심 기자재 제작업체다. 이 회사 인수를 위해 포스코는 총 1,600억원을 들였다. 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800억원을 추가 지원했지만 성진지오텍(포스코플랜텍)은 아직 대규모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순손실이 약 1,000억원, 그동안 쌓인 결손금만 3,000억원이 넘는다.
포스코의 자회사인 포스코ICT가 삼창기업을 인수한 것도 마찬가지다. 포스코ICT는 2012년 3월 당시 원전 업계 예상 가격(200억~300억원)을 크게 웃도는 1,000억원대에 삼창기업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두철 전 삼창기업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경주 이씨로 종친회장을 맡으며 이상득 전 의원 등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정 회장이 선임될 당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천신일 전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이 개입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정 전 회장의 무리한 사업확장에 세계적인 철강공급 과잉과 수요침체까지 겹치면서 포스코의 빚은 지난 5년간 20조원 가량 불어났다. 영업이익률은 2008년 17.2%에서 2013년 4.8%로 곤두박질쳤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2012년 말 포스코의 장기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내렸고 지난해 말 다시 BBB로 강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권 회장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 것은 산업은행의 동부제철(016380)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 제안이다. 권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솔선수범의 첫 임원 회의에서 급여를 30%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M&A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원론적인 수준에 불과했고 오히려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상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악화된 포스코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취임 전부터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심, 무엇보다도 먼저 조직 군살 빼기에 나섰다. 철강 본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6개 사업 부문을 철강사업·철강생산·재무투자·경영인프라 등 4개 본부로 통합했다. 그룹 차원의 투자 사업과 경영정책 등을 조율하기 위해 가치경영실을 새로 도입했고 작고 강한 조직으로의 전환을 위해 임원 수도 대폭 조정했다. 임원실 공간이나 비서 숫자도 줄였다.
정 전 회장이 '글로벌 성장'을 목표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M&A에 나선 것과 달리 '내실 다지기'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 △신사업 전면 재평가 △재무구조 개선 △경영인프라 쇄신 등을 '4대 혁신 어젠다'로 선정한 것도 이를 위한 전략이다.
권 회장의 이런 의지와 달리 산업은행이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를 제안한 것은 매각 작업에 속도를 높여 대기업 구조조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산은 입장에서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동시에 경영할 능력을 갖춘 곳이 포스코 밖에 없는데다 동부제철 인천공장이 중국 철강사에 넘어갈 경우 기술 유출 및 국내 시장 잠식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바뀌는 포스코 입장에서는 산은의 인수 제안이나 국세청의 세금 추징 같은 내용이 상당한 압박 카드가 될 것"이라며 "권 회장이 취임 초부터 난관에 부딪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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