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쎄미켐(005290)은 지난 2008년 사업부였던 동진디스플레이재료를 분사했다. 자회사로 분리해 사업을 더 키우려고 한 것. 하지만 동진디스플레이재료는 디스플레이 패널 업황 악화에 따른 경쟁심화와 수익성 하락으로 지난 2011년 이후 3년간 순손실을 기록해 부실 계열사로 전락했다. 동진쎄미켐은 재무구조 악화를 무릅쓰고 관리비용 절감을 위해 5월26일 적자 자회사인 동진디스플레이재료를 다시 품기로 했다.
엘컴텍(037950)의 자회사인 마이크롭틱스는 2004년 설립됐다. 설립 1년 만에 세계 최소형 휴대폰 카메라 렌즈를 개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가 모회사 엘컴텍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함께 위기를 맞았다. 마이크롭틱스가 엘컴텍 채권을 다량 보유한데다 지급보증까지 해준 탓에 덩달아 자금 사정이 악화된 것. 이후 지난해 시장에 매물로 나왔지만 난항을 겪다 결국 지난달 29일 엘컴텍이 흡수합병 결정을 공시했다. 엘컴텍은 공시한 날로부터 5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며 불과 7거래일 만에 주가가 반토막 났다.
올 들어 코스닥 상장사들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설립했던 자회사나 계열회사의 성장성이 둔화되자 관리비용 절감 차원에서 흡수 합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만큼 모회사도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투자할 때 지표로 삼을 만하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닥기업이 자회사나 계열회사를 흡수 합병한 사례는 22건이다. 그 중 절반인 11개 업체가 흡수합병을 하고 난 뒤에도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주가만 떨어트렸다.
비아이엠티는 올해 1월22일 100% 자회사인 비아이신소재를 흡수합병해 경영 효율성을 증대시키고자 했으나 올 2·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0% 가까이 줄어들며 공시일 이후 주가도 78.38%나 떨어졌다. 다비치를 흡수합병한 유원컴텍도 흡수합병 공시일 이후 주가가 36.27%나 내렸고 케이디씨(4월14일, -2.81%), 승화산업(4월25일, -29.45%), 위닉스(4월29일, -29.40%), 파워로직스(047310)(6월5일, -20.10%), 이니텍(053350)(7월10일, -15.02%), 오로라(039830)월드(9월25일, -0.85%), 알파칩스(117670)(9월26일, -9.35%) 등도 흡수합병을 밝힌 이후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니텍 관계자는 "계열사의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분리 운영에 들어가는 관리 비용을 줄이고 경영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이번 흡수합병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경영컨설팅을 주 업무로 하고 있는 이니텍스마트로홀딩스는 스마트로라는 금융 밴(VAN) 서비스 업체 인수를 위해 2009년 설립됐다. 이니텍스마트로홀딩스는 스마트로의 지분 60%를 갖고 있다. 현재 이니텍스마트로홀딩스는 포화상태에 이른 금융 밴 시장의 성장성 둔화에 따라 2012년부터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실적이 부진한 자회사를 별도 법인으로 가지고 있다면 재무제표상에서도 부실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흡수합병을 통해 모회사의 한 부서로 축소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며 "비용절감 효과는 분명히 있지만 결국에는 모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자회사를 흡수합병하는 업체에 투자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회사를 흡수합병해 원하는 대로 비용절감을 하거나 사업 자체를 철수해 재무제표가 개선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회사 흡수합병 이후 해당 자회사의 사업 진행상황을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자회사 합병을 통해 사업의 비효율성이 제거됨에 따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회사가 개선될 수도 있다. 알톤스포츠(123750)가 전기자전거를 생산하는 자회사 이알프스를 흡수합병한 사례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강정호 NH농협증권 연구원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와의 합병이기 때문에 연결 실적에는 변화가 없지만 연구개발과 생산·영업·판매의 일원화를 통한 비효율성 제거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판단된다"며 "알톤스포츠는 3·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35% 늘어난 2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모회사의 부진으로 인한 흡수합병이라기보다 전기자전거를 본격적으로 국내외에 판매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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