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경험을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두뇌에 저장한다. 이 같은 기억 능력이 손상을 입기라도 하면 뇌의 사고기능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며 알츠하이머, 기억상실, 건망증 등 심각한 뇌질환 장애를 일으킨다. 하지만 뇌는 아직도 불가사의의 영역으로 남아있어 한번 손상된 기억세포를 되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는 이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케 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바로 이 대학의 생체공학과 테드 버거 박사가 주도하고 있는 ‘뇌-컴퓨터 접속장치 프로젝트’가 그것. 인간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세포의 손상된 부위를 대체할 수 있는 ‘기억 임플란트 전자 칩’(memory implant chip)의 개발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실제로 기억 칩 개발이 완료된다면 불치병으로 취급되던 알츠하이머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만큼 간단히 치료될 수 있다. 테드 박사는 “건강한 두뇌에서는 뇌신경이 보낸 전기신호가 해마조직을 지나며 뇌의 어딘가에 기억으로 저장되지만 해마의 일부가 손상되면 저장능력도 함께 떨어진다”며 “기억 칩은 손상된 해마조직의 바로 앞에서 전기신호를 가로채 손상부위를 지난 지점의 해마조직에 주입함으로서 기억세포를 대체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미 뇌신경의 신호를 받아 건강한 뇌세포로 전달해주는 1세대 기억 칩을 개발, 살아있는 쥐의 뇌와 전기신호를 주고받는데 성공한 상태다. 이 칩은 깃털보다 가볍고 깨알보다 작지만 신경세포 100개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팀은 올해 하반기 중 기능을 한층 개선한 2세대 기억 칩을 기억력이 손상된 쥐의 뇌에 이식해 볼 계획이며, 4년 내에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원숭이의 뇌에도 이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각종 뇌질환의 치료는 물론 뇌의 사고 구조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의식의 진정한 의미도 이해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물론 사람의 정신을 기계가 제어한다는 사실에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65억명의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사고과정과 기억, 경험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뇌 세포에 인위적 조작이 가해지면 심각한 정체성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두뇌와 컴퓨터의 상호교류가 인류의 삶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테드 박사는 “이 분야는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과학”이라며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전자 칩이 인간의 기억세포를 대체하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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