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분트(Verbund)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 기업 역사만 140년에 달하는 독일의 바스프가 지난 2001년 내놓은 경쟁력 업그레이드 방안이다. 조진욱 한국바스프 회장은 “페어분트란 일종의 통합생산체제”라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백개의 제조공장을 서로 연결해 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다른 공장의 원재료로 쓰이게 해 물류비와 원가를 줄이는 생산기법”이라고 설명한다. 세계 39개국 170개 자회사와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글로벌 공급체인으로 작동시키는 셈이다. 바스프는 이를 통해 독일 루드비히슈하펜 본사에서만 연간 5억유로의 비용을 절감하고 북미 지역을 포함해 총 1억5,000만달러의 비용을 줄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조 회장은 “페어분트는 비용절감 외에 바스프만의 독특한 글로벌 R&D 체인도 형성시킨다”며 “페어분트를 통해 전세계 800개 생산기지들을 아우르는 공동 R&D 네트워크를 구성해 미래성장동력을 발굴, 육성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림부르커호프에 위치한 바스프 농화학연구소는 그룹의 R&D 중심센터 역할을 하며 바스프가 보유한 10만건 이상의 특허를 이용해 미래성장 엔진을 만들고 있다. ◇입체적인 부가가치 구조를 만들어라=글로벌 단위의 경쟁이 격화되자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부가가치 창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경쟁력 요소들을 단순히 평면적으로 널어놓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짧게는 비용을 줄이고 길게는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조하는 것이 바스프 방식이라면 자체 생존능력 강화에 그치지 않고 한 겹, 두 겹의 갑옷을 마련하는 것이 도요타 방식이다. 55년 무파업 신화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만들고 있는 도요타의 감춰진 경쟁력은 무엇인가. 도요타의 협력업체인 니폰덴소에 해답의 일부가 숨어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이 회사는 출발부터 도요타와 한 몸이었다. 도요타의 한 부서(부품담당)였던 이 회사는 지난 49년 분리 독립한 후 때론 계열사로서, 또 때론 듬직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때문에 니폰덴소는 품질 제일주의인 도요타의 경영철학을 일본의 어느 기업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제프리 라이거 미시간대학 교수는 “도요타는 부품을 공개입찰을 통해 구매하는 제품으로 보지 않는다”며 “TPS나 그와 유사한 시스템을 따르는 부품업체만이 도요타에 납품을 하게 되고 도요타는 가장 충성스런 공급체인을 보유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갔다”고 지적했다. 도요타는 현재도 니폰덴소 같은 ‘도요타 밖의 도요타’를 수십, 수백개 육성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의 가능성=쿠웨이트 시티에서 동북쪽으로 90㎞ 떨어진 SK건설의 플랜트 설비공사 현장. 섭씨 45도의 열기에 숨이 콱 막히는 사막의 거대한 플랜트는 오아시스를 만났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SK건설이 2년 연속 총 2조4,500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쿠웨이트 플랜트의 숨은 조력자는 SK㈜. 62년 원유를 수입하며 맺어온 SK㈜와 쿠웨이트의 상호신뢰 관계는 형제 이상의 관계로 지속됐고 이 관계가 계열사인 SK건설의 플랜트 공사 수주로 이어진 것. SK그룹의 경영전략인 ‘따로 또 같이’가 결실을 맺은 셈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따로’에 도움이 되는 ‘같이’가 있어야 한다”며 “계열사들이 서로 생존에 도움이 되게끔 시너지를 높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선진기업의 경쟁력 업그레이드 방안 가운데 하나인 코피티션은 ‘따로 또 같이’라는 말로 국내 대기업의 한국형 경쟁력 강화방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수십개의 계열사들로 묶여 있는 국내 대기업의 현실을 대안 없이 비판하기보다는 계열사들이 코피티션을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해 도약할 수 있는 순기능을 먼저 찾아야 한다. ◇산업 클러스터의 집중력=한국형 경쟁력의 모델이 되고 있는 ‘따로 또 같이’ 전략은 SK 외에도 삼성ㆍLG 등 국내 초우량 기업에서 실천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ㆍ정보통신ㆍLCDㆍ디지털미디어(DM)ㆍ생활가전 등 5가지 총괄로 나눠진 사업부들은 서로 코피티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실례로 반도체나 LCD 등 소재사업부의 경우 정보통신과 DM의 엄격한 품질관리ㆍ기술혁신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역으로 정보통신과 DM은 반도체와 LCD가 제공하는 세계 최고의 부품이 세계 최고의 휴대폰과 TV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LG는 파주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계열사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다. LG화학→LG이노텍, LG마이크론→LG필립스LCD→LG전자로 이어지는 흐름은 LG를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디스플레이 전문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은 “어떤 환경변화에도 강한 사업구조화 사업모델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라며 “파주 디스플레이 단지는 글로벌 LG의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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