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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KBS1, 박정희 시대 명암 조망
입력1999-10-17 00:00:00
수정
1999.10.17 00:00:00
박연우 기자
대한민국 헌정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박정희 통치시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현대사회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지금 우리에게 박정희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1999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진정 박정희시대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KBS-1TV는 25일부터 27일까지 10·26 20주년을 맞아 특집기획 3부작 다큐멘터리 「박정희」를 매일 오후 10시에 방송한다.
「제1부-예정된 선택, 쿠데타」(25일)에서는 식민지시대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 권좌에 오르기까지 박정희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과 10년이나 오랜 세월을 두고 준비한 5·16 쿠데타가 성공하게 된 배경 등을 살펴본다.
이 프로는 그의 인생행로에서 그의 의식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서 세 가지 사건에 주목한다. 그 하나는 문경보통공립학교에서 3년간 교사생활을 마치고 40년 돌연 만주로 떠난 것. 그리고 당시로서는 20살의 늦은 나이에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한다. 일본군인이 되기 위해 나이를 줄이고 혈서까지 써보낸 박정희. 교사 박정희는 왜 군인이 되었는지에 주목한다. 또하나는 48년 여순반란사건. 이 사건 이후 군 내부에서는 좌익을 몰아내는 대대적인 숙군작업이 벌어진다. 반란군 장교의 명단에는 박정희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 선고. 그리고 형의 면제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은 이후 박정희에게 좌익경력이란 굴레를 씌운다. 과연 박정희는 좌익이었나.
나머지 하나는 박정희가 처음으로 쿠테타 모의를 시작한 52년에 초점을 맞춘다. 쿠테타가 성공한 것은 10년이 지나서였다. 5·16 쿠테타가 일어나기 이전 미국은 이미 콜론보고서와 팔리보고서를 통해 기존의 정치세력을 대체할 군부세력의 등장을 예견했다. 과연 박정희를 현대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킨 5·16 쿠테타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제2부-대한민국주식회사」(26일)에서는 집권후 대한민국주식회사의 총사령탑을 자임한 박정희가 그의 상징과도 같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해나가는 과정을 집중조명한다. 쿠테타 성공후 박정희의 인생에서 하나의 축으로 꿰어지는 것은 경제개발. 64년 본격적인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면서 77년 수출 100억달러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박정희식 경제개발 요소를 간추려본다. 박정희의 열정과 지도력, 절대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국민적 공감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시의적절하게 도와주었던 국제상황 등이다.
「제3부-유신공화국」(27일)에서는 총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결국 심복의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기까지 이른바 「10월유신」 이후 그의 몰락과정을 추적한다.
「10월유신」으로 그는 황제에 비견할만한 절대권력의 자리에 올랐으나 교련과 국기하강식 행사가 강제되고 막걸리 마시고 술김에 한 말조차 보안법에 걸리는등 대한민국은 소시민의 권리나 인권은 찾아볼 수 없는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심은 이미 그의 곁을 떠나고 있었으며, 결국 국민은 그를 심판했다.
허진 PD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박정희만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으며 우리는 박정희 연구를 통해 우리의 과거사를 되돌아보고 이를 교훈으로 삼아 새천년을 맞이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연우기자Y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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