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 전광우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공약의 덫에 걸리지 말고 '성장동력 확충' 주력을"시장 믿음 얻을 수 있는 시그널 보내야 대담=이용웅 부국장대우 경제부장 yyong@sed.co.kr 정리=이재철기자 humming@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공약의 덫에 빠지지 말고 경제 활력 치유할 근본 해법부터 찾아야" "'공약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야 한다." 세계은행(World Bank) 금융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국제 '금융통' 전광우(59ㆍ사진) 딜로이트코리아 회장은 '경제 살리기' 채비에 한창인 새 정부에 최우선적으로 '차분한 접근'을 주문했다. 이명박 정부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클수록 오히려 단기 성과의 '유혹'을 참고 '긴 호흡'으로 성장동력을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새 정부의 높은 경제성장 목표치에 대해 긍정적 시각과 비관적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전 회장은 경제 체질 개선으로 연평균 8% 이상의 '성장 기적'을 이룬 아일랜드를 근거로 "분명 우리도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민간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새 정부의 부동산시장 연착륙 목표에 대해서도 그는 "'인위적 부양'이 아닌 '수급 조절'로 부동산시장의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며 "정부 출범과 함께 우선적으로 부동산시장에 이 같은 시그널을 보내 시장의 '믿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특히 "일부 우려와 달리 부동산시장은 적절한 활력을 불어넣어줄 경우 오히려 시장 위축을 유발하는 신용경색 위험을 완충시킬 수 있다"며 이명박 정부를 향해 제기되고 있는 과도한 버블 확대 우려 역시 경계의 대상임을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 역대 정부에서 국가 어젠다로 추진해왔던 '금융허브'전략과 관련, "그간 관련 로드맵은 많았지만 정작 '실행'이 없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정부부처를 유기적으로 통합,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부터 만들고 급변하는 시장 변화를 발 빠르게 정책에 수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담=이용웅 부국장대우 경제부장 yyong@sed.co.kr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경제 공약인 '대한민국 747'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지만 이에 따른 세부 실천 과제는 아직까지 많이 미흡한 듯한데.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 '국가 경제 선진화' 목표에 대해 시장 현장의 금융 종사자로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 새 정부가 조심해야 할 점은 '공약의 덫' 혹은 '숫자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다양하게 제시된 공약이 현실과 상충되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경제 살리기'라는 목표의 경우 상대적으로 어떤 경제 분야가 죽었는지를 따져보는 근본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던 부문이 '투자'였다면 새 정부가 출범 전 시장에 투자를 살리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만만치 않겠지만 오히려 여기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정책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이 당선자의 고도성장에 대한 비관적 목소리와 긍정적 목소리가 엇갈리는데. ▦최근 아일랜드에서 이틀간 주요 정부책임자와 민간 최고경영자(CEO)들이 함께 한 회의에 참석했는데 아일랜드 사례는 새 정부의 목표가 가능한 현실임을 확인해준다. 아일랜드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8~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10년 전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올해 5만달러를 돌파했다.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전략산업을 키우고 금융산업 선진화로 경제 체질을 업그레이드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 역시 향후 10년간 경제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747' 계획은 상당히 도전적인 목표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민간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높여나간다면 10년 내 잠재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 강국 달성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개방경제를 위한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속적 확대 역시 새 정부의 중요한 경제정책 이슈가 될 전망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체결 대상국의 우선순위 등 전략적 접근이 중요한 시점으로 보이는데. ▦지난 정부의 공과(功過)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분명 FTA는 참여정부의 중요한 성과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개방 체제를 확산시키는 게 국익에 이롭다. 향후 1조달러대 무역국가로 성장한다는 점, 특히 무역자유화가 투자 확대와 연계돼 있다는 점은 더더욱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미 타결된 한미 FTA의 경우 현재 양국 의회에 미승인 상태로 계류돼 있고 미국 민주당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새 정부는 우선 국내에서 이해가 엇갈리는 관련 현안을 풀어서 정치적 리더십으로 국회를 통과시켜야 한다. 이후 외교역량 강화로 새해 상반기까지 미 의회 통과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데 최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새 정부가 경기부양적 부동산정책을 펼 경우 현재 소강 상태에 빠진 부동산경기에 다시 버블을 발생시키는 정책의 딜레마를 유발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새 정부가 시장의 믿음을 얻는 첫 단추도 바로 이 부분이다.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하고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새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인위적 부양'이 아니라 '시장기능의 복원'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수급 조절'을 통해 시장을 정상화하는 게 기본 방향이다. 규제를 통한 '가격 억제식' 접근 대신 공급을 원활히 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과도한 양도세와 종부세, 특히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완화조치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일반 국민의 개인자산구조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종부세는 오랫동안 거주했던 은퇴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합리적인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한 여론도 찬반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현 정부하에서 지방균형발전,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 과정으로 오히려 토지 투기 열풍을 조장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운하정책이 현실로 옮겨지더라도 개발이익에 대한 철저한 환수 등 보완적 정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다만 민감한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 시장에 있는 입장에서는 너무 지나친 우려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시장에 활력을 집어 넣으면 부동산시장 위축으로 인한 신용경색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경기 악순환을 차단시킬 수 있는 만큼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시장을 살려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 추진된 '금융허브' 구축 노력이 소기의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해결책은 없나. ▦정부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라고 본다. 로드맵 구축이나 관련 논의는 무성했지만 상대적으로 실천이 취약했다. 런던ㆍ두바이와 같은 해외 성공 사례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금융허브 구축과 관련한 정부 컨트롤 타워가 세워져 각 부처 활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둘째, 금융센터 구축이든 허브 구축이든 이 작업은 '시장'을 상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장은 지속적이고 매우 빠르게 변한다. 정부 관료가 일방적으로 허브의 밑그림을 그리는 접근법은 지양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아일랜드는 '클리어링 하우스 그룹(clearing house groupㆍ총리실 산하 금융허브 민관협의체 기구)'이라는 컨트롤 타워를 통해 각 부처 간 정책을 효율적으로 조율하고 발 빠르게 시장 변화를 정책에 반영해왔다. -새 정부 출범 이듬해인 오는 2009년부터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새 정부가 국내 금융산업과 자통법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연계시켜야 하나. ▦자통법은 은행 편중의 국내 금융산업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새 정부는 이 같은 입법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후속조치를 통해 소기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증권ㆍ자산ㆍ보험 등 비은행 부분의 경쟁력 강화가 금융허브를 구축할 수 있는 요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 금융허브전략은 런던식 혹은 뉴욕식 등으로 모방하기보다는 자산운용 등 '특화'된 부문을 육성한다는 현실적 목표를 삼고 있다. 이처럼 자통법이 금융허브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은행 부문과 비은행 부문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금산분리 등 새 정부의 규제 완화에도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감한 이슈다. 사실 지난 2001년 우리금융지주 총괄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금산분리 완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현존하는 금산분리 체제하에서는 결국 외국인 투자가로 투자 주체가 한정될 수밖에 없고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가 간 역차별 문제가 발생해 이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이슈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산분리가 국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선결요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통법을 통해서도 비은행 부문을 중심으로 종합금융그룹화와 경쟁력 확충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들 수 있다. 자통법을 우선 추진하면서 금산분리, 정확히는 은산분리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 -신규 일자리 창출도 관심사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면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고도의 접근법이 요구되는데. ▦해외 한국 경제 설명회(IR)에 국제금융대사로 활동하면서 얻은 대안 하나를 소개하자면 중국은 '정부개발원조(ODA)' 프로그램을 국내 인력의 해외 유출과 함께 연계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중국이 지원하는 해외발전 프로젝트에 중국 인력이 들어가 있다. 물론 전문가 성격보다는 비전문가의 인력 유출이 많지만 이는 프로그램을 달리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해외 ODA를 국가 인력 발전전략과 연계해 세계 각지의 수혜국에서 한국의 젊은 글로벌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제도권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빈곤층을 위해 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을 해주는 서민은행 등 다양한 대책을 준비 중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이 같은 정부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는데. ▦개방과 경쟁의 시대에서 뒤지는 소외 빈곤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은 국가와 국민의 공통 책무다. 다만 마이크로 파이낸스(무보증 무담보 소액대출)든, 사회책임연대은행이든 이름에 상관없이 신용불량자와 빈곤층에 제공되는 금융 지원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 준용돼야 한다. 오히려 국가가 다 책임을 진다는 생각보다는 사회적으로 더 '가진' 이들에게 건전한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민간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통합을 촉진하고 국가의 격을 높이며 민간기업으로 국가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고취시키는 해법이다. ● "규제 완화가 새정부 정책기조라면 기업은 체질개선 노력을" "규제의 양면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규제 완화가 새 정부의 정책 기조라면 이에 상응하는 기업 스스로의 노력도 똑같이 중요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업 규제 완화의 '훈풍'을 기다리고 있는 재계를 향해 전광우 딜로이트코리아 회장은 주저 없이 뼈 있는 '쓴소리'를 내놓았다. 철저한 시장경제론자임을 자처하는 전 회장이지만 그간 기업경쟁력 약화가 대부분 정부 규제 때문이었다는 식의 단선적 사고는 재계 스스로에게나, '선물보따리'를 마련 중인 새 정부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경종의 목소리였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금까지는 규제 완화의 효과를 숫자만으로 따졌는데 이제는 진정으로 기업들이 원하는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 재계의 숙원사항으로 제기돼왔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출자총액 제한 규정 등이 폐지 혹은 완화 대상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 회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규제의 속성을 강조하며 높은 수준의 규제 철폐만으로 재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심리적 턴어라운드라는 '새 정부 효과'도 분명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걸 풀어줄 경우 기업 체질 개선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규제의 순기능도 사라진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전 회장은 "경쟁의 마인드와 규제정책이 글로벌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해소해야 하지만 기업 역시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뛰기 위한 내부요건을 함께 갖춰야 한다"며 "정부가 친기업ㆍ친시장적 소신을 가지고 기업을 지원할 때 기업의 사고방식(mindset)도 글로벌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완착됐지만 여전히 정부가 모든 걸 다 풀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사고가 잔존하는 재계에 던지는 일침이었다. "과감한 기업가 정신과 생존을 향한 자구노력, 경영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수반될 때 정책 지원도 그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새 정부의 금융시장 관련 감독기구 개편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는 '수요자' 관점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 정부 인수위원회 안팎에서는 현재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일원화, 재정경제부와의 통합 등 다양한 조직 개편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전 회장은 "기본적으로 수요자에게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따져 정책 대상인 민간 금융기관 등 시장참여자의 관점에서 효율성을 따져 보면 2중, 3중의 감독 체계가 아닌, 그리고 정책과 감독이 서로 이해상충되는 소지를 피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일원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기업 민영화 등 새 정부에서 본격적인 수술대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공공 부문 개혁 문제에 대해 전 회장은 "참여정부에서 나름대로 개혁 작업을 펼쳤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던 부문이 바로 공기업 민영화였다"며 "민간기업 중심의 시장경제 활성화를 화두로 올린 만큼 공기업 민영화도 적극 추진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공기업 민영화 일정에 대해 그는 "기업은행의 경우 이미 상업은행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만큼 민영화를 늦출 필요가 없다"며 "다만 산업은행은 남북 경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만큼 기능 면에서 차별화한 민영화전략을 추진하는 방안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약력 ▦1949년 서울 출생 ▦서울사대부고, 서울대 경제학과 ▦1981년 미국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1972~1975년 한국개발금융 근무 ▦1982~1986년 미 미시간주립대 경영대 교수 ▦1986~1998년 세계은행 금융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1998~2000년 경제부총리 특별보좌관 ▦▦2000~2001년 국제금융센터 소장 ▦2001~2004년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2006~2007년 경제부총리 국제금융 담당 고문 ▦2004~현재 포스코 사외이사 ▦2007~현재 대한민국 국제금융대사 ▦2006~현재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입력시간 : 2008/01/01 18:15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