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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의 순간/정용문 한솔PCS 사장

◎‘중견그룹 육성’ 정부정책 예측/PCS사업 진출 선언/“국제전화보다 경쟁력 높다” 판단/삼성 등 빅4 제치고 사업권 따내올해 신년 벽두가 막 지난 1월21일. 한솔그룹은 PCS(개인휴대통신)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PCS를 정점으로 한 정보통신사업을 그룹의 미래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거창한 장기전략도 아울러 제시했다. 당시는 신규통신사업권이 96년 재계의 최대 이슈로 바짝 부각되던 시기. 거의 모든 재벌그룹과 모든 기업이 나섰다. 통신사업권을 거머쥐어 「한 번 일어서 보겠다」는 부푼 꿈을 한참 키우고 있던 때다. 한솔의 PCS사업 진출선언에 대해 「코웃음」을 치지 않은 그룹은 한솔 밖에 없었다. 「수조원이 넘는 사업을 감히 한솔이…」 대개 이런 시각이었다. 그 때만 해도 정보통신부의 사업자 선정방침은 특별한 단서없이 「PCS사업자는 3개 선정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PCS사업은 삼성·현대·LG·대우 등 빅4와 같은 「고래」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어차피 한국통신이 사업권을 따낸다고 치면 나머지 2장의 티켓을 놓고 「고래」들끼리 피튀기는 격돌이 예상됐다. 여기에 「새우」 한솔이 결연히 도전장을 던지고 나선 것이다. 당시 한솔그룹의 정용문 정보통신사업단장은 지금 한솔PCS의 사장이다. 정사장이 말하는 결단의 변. 『1년 이상의 모색을 거친 결정이었다. 통신서비스에 진출한다는 방향을 잡고 연구검토를 거듭한 끝에 국제전화와 PCS를 후보로 압축해 놓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숱한 격론을 벌였다. PCS파 못지않게 국제전화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결국 PCS를 택한 것은 과학적 분석과 예측에 의해서였지만 솔직히 「베팅」한다는 심정도 있었다.』 당초 한솔은 PCS보다 국제전화 쪽에 더 기울었다. 정식으로 연구용역을 맡긴 미 보스톤컨설팅그룹(BCG)도 국제전화를 강력히 추천했다. 언론에서는 한솔의 국제전화사업 추진이 기정사실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국제전화는 앞으로 급속도로 대중화될 인터넷전화라는 강력한 대체서비스를 맞게 돼 있다. 인터넷으로 국제전화를 하면 요금이 10분의1 밖에 안된다. 더구나 국제전화시장에는 이미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포진해 있다. 설사 사업권을 따더라도 국제전화에 「승부」를 걸기엔 너무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전화사업에 대한 회의 때문에 PCS를 선택했다는 뜻은 아니다. 한솔이 PCS로 결정하면서 밟아나간 논리전개는 혀를 내두를 만하다. 정부의 정책방향을 한 치의 오차없이 정확히 예측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의주시했다.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이 워낙 커다란 이해가 걸린 사안인 만큼 단순히 통신정책차원에서만 결정되지는 않으리라고 봤다. 당시 중소기업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문을 닫는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 육성책이 강하게 요청됐다. 취임한 지 얼마 안된 당시 이석채 정통부장관은 「경제력집중 완화」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또 과거와 달리 정통부내에 통신장비 제조업체의 서비스 겸업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도 감지됐다. 따라서 PCS사업권을 모두 큰 그룹들이 가져가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적어도 하나 정도는 중견그룹의 몫으로 기회가 올 것으로 판단했다. 그게 적중했다.』 묘하게도 한솔의 PCS사업 진출선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장관은 전혀 예상밖의 사업자 선정방향을 발표했다. PCS사업자를 ▲한국통신 ▲장비제조군 ▲장비 비제조군의 3개군으로 나눠 각각 1개씩 허가한다는 것이다. 빅4는 허를 찔렸다. 경제력집중의 당사자격인 이른바 빅4를 장비군으로 한데 몰아넣는 고단수처방이었다. 하지만 한솔같은 중견그룹은 비장비군에서 「고래없는 전쟁」을 벌일 수 있었다. 한솔의 예측은 너무 정확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한솔은 예측하고, 결정한뒤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통신서비스와 제조 겸업의 문제점, 중견기업 육성의 당위 등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도하는 논리를 개발, 여론화하는 양면전술도 구사했다. 「비즈니스는 전쟁」이라는 명제에서 보면 한솔은 「승자의 필요조건」을 갖춘 기업이다.<이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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