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올해 덜 걷힌 세금은 8조9,000억원. 정부는 여기에 내년 나라살림 계획을 세우면서 세수 부족을 7조8,000억원으로 추정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내년 세 부족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3년 동안 쌓일 세수 결함 규모가 서울시의 1년 예산(12조~13조원) 보다 많은 16조7,00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정부는 추가 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표면적으로는 경기를 살리는 데 쓰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추가로 만들어 낼 돈은 결국 펑크 난 가계부를 메우는 데 쓸 수밖에 없음을 금세 발견할 수 있다. 그나마 이런 문제들을 꼬집는 데 그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정작 끔찍한 것은 만성적인 세수 부족이 순간순간 국가 재정의 ‘파탄’으로 연결되는 첫 길목이라는 점이다. 한 조세전문가는 “앞으로 2년간 정부가 지출 규모를 계속 늘려가고 세수가 늘지 않는다면 건전재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헛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 늦기 전에 세수 부족 현상의 원인과 처방에 대해 첫 단추부터 다시 꿸 것을 권고한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세 수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지름길은 내수(소비)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수출은 환율 절상과 관세 환급분 등을 고려하면 세수 증대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내수와 수출의 단절현상이 고착화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의 소비 상황은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34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는 소비회복에 무거운 짐이고 단시일 내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도리어 해외에서 소비된 돈이 갈수록 늘어나며 15조원 규모에 달하고 있다. 이 돈이 국내에서 풀렸다면 1조5,000억원의 부가세가 새로 창출됐을 것이다.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은 “내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세수가 정부의 세입ㆍ세출을 못 따라가는 구조”라고 단언했다. 현재의 세제 시스템과 경제구조 아래에서는 아무리 세입을 늘리려 해도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똑같은 성장을 해도 내수가 좋지 않으면 세수 부족 문제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큰 정부를 지향하며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지출을 대폭 늘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반직 공무원 수가 지난 2002년 말 88만9,993명에서 2004년 말 93만2,555명으로 늘어난 것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단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선진국에 비해 재정은 건전하고 (국민들은) 돈 좀더 내도 된다”는 논리로 지출을 계속 늘리고 있다. 내년 나라 살림(총 지출) 규모는 5% 성장률을 토대로 올해보다 8~9% 늘어난 145조원(일반 회계 기준)에 이른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부터라도 (재정) 통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 첫발로 ‘몸통을 뒤 흔드는 세제 개혁’을 권고한다. 세수 부족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정,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해 세율과 세목 등을 총 정비하는 근본적인 조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것도 문제다. 수입은 뻔한 상화에서 무리하게 큰 정부를 추구하면 지출 증가가 동반되면서 재정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스웨덴 등 북구 유럽은 90년대 중반 재정의 고갈을 경험했다. 이들 국가는 지출에 대해 캡(한도)을 설정했고 3년간은 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하는 등 강력한 정책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이들 국가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최대한 보수적인 경제 전망 아래에서 세입과 세출 계획을 세우고 독립된 별도의 기구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전망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5% 성장을 깨질 수 없는 성역으로 생각하고 여기에 맞춰 세입ㆍ세출을 계획하다가 뒤늦게 바꾸는, 그리고 나라 살림살이가 정치권에 의해 휘둘리는 우리의 현실과는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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