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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입력2004-01-06 00:00:00
수정
2004.01.06 00:00:00
그리스ㆍ로마 신화에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나온다. 테세우스는 아버지인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를 찾아 가다가 여러 악당들을 만난다. 그 중에 프로크루테스는 행인을 붙잡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쇠침대에 뉘어보고 키가 침대 길이 보다 짧으면 행인의 몸을 잡아 늘여 죽이고, 길면 발을 잘라 죽인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고치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물러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이 발언에서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연상되는 것은 왜 일까.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비교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지만 이런 뜻으로 알아듣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정치권은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10분의 1` 발언을 보면 노 대통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이 대통령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지난해말 측근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도술ㆍ안희정씨 등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 받은 불법 자금이 61억원에 달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 가운데 어디까지가 불법 대선자금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검찰 수사가 이제 겨우 초반을 지났다는데 있다. 검찰이 지난 2개월 동안 수사에서 한나라당의 불법 자금은 500억원 이상 밝혀냈지만 노 캠프 자금에 대해서는 아직 베일을 벗기지도 않은 상태다.
검찰이 그 동안 한나라당의 최돈웅 의원과 같은 모금역할을 한 사람이 노 캠프에도 있다고 수차례 언급한 점을 감안하면 최종 수사결과가 나오면 노 캠프의 불법 선거자금 규모도 우리의 상상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 노 캠프쪽의 수사가 더디다는 지적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만 찾아내면 될게 아니냐”며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여기에다 `측근비리` 특검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노 캠프의 불법 자금이 추가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이 자신의 말에 스스로 구속되는 일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 나라 국민들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나라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새해는 대통령이 말을 아끼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오철수 사회부 차장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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