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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신탁 잘못했다간 재산 뺏긴다?
입력2003-12-10 00:00:00
수정
2003.12.10 00:00:00
이상훈 기자
명의신탁약정을 통해 매입한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 20부는 9일 “법적 효력이 없는 명의신탁을 이용해 토지를 매입했다 하더라도 이미 소유권 이전등기가 완료된 이상 토지반환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명의신탁을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원인의 급여행위`로 봐야 한다며 부동산실명제법상 과징금 부과나 형사처벌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명의신탁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증여세나 양도소득세 등 조세부과를 회피할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이 만연한 실정임을 감안하면 재판부의 판결은 상당히 진보적이다. 특히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기위해 각종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시점에서 사법부도 불법적인 부동산 거래에 이용되는 명의신탁에 대한 강력한 제재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변화를 수용한 판결로 여겨진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헌법상의 재산권이나 사적계약 자유의 원칙 등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특히 지난 95년 7월부터 부동산실명제를 시행하면서 명의신탁에 의한 부동산등기는 형사처벌을 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또한 명의신탁 해지를 가장하여 증여 또는 매매하는 경우에도 형사처벌과 함께 증여세 또는 양도소득세를 추징하고 있다. 따라서 소유권 불인정이라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회질서의 확립이 가능하다고 보여지는데도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박탈하는 것은 지나친 점이 없지 않다.
더욱이 악의를 가진 매도인이나 명의수탁자에게 부당이득을 주면서까지 사회질서 확립을 추진한다면 계약의 기본인 신의성실의 원칙은 깨지고 무수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지난 1월 대법원 판례도 부동산실명제법의 취지가 명의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근거를 들어 소유권을 인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물론 부동산실명제법상의 특례조항이나 신탁법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는만큼 명의신탁에 의지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기업 등이 임원 명의로 업무용 토지를 사는 경우 자산을 은닉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터무니없는 보상권 요구 등을 피하려는 의도가 훨씬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형사처벌과 세금 추징에 더해 엄청난 금액의 소유권마저 박탈한다면 형평성 있는 법의 적용이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이번 판결은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불법적이고 조세포탈 목적의 명의신탁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상급심의 보다 종합적인 판단을 기대해 본다.
<이상훈기자 s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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