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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役割종료와 아름다운 퇴장

지난 96년 1월18일 정계은퇴를 선언한 당시 민자당 이춘구(李春九)대표가 기자들에게 밝힌 은퇴의 변이다. 그가 모셨던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이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에 따라 구속된 청산정국 마무리 단계에서였다.李씨는 육사 14기출신으로 5공출범과 함께 정계에 입문, 6공과 김영삼(金泳三)정부 중반에 이르기까지 11~14대 3선의원으로 내무부장관, 국회부의장, 집권당 사무총장·원내총무·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대표 등을 지내며 한 시기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全·盧씨와는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은퇴는 인간적 도리, 의리로 해석됐다. 또다른 쪽에서는 자신의 시대와 역할이 끝난데 따른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이미 은퇴한 분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결례이겠지만 현직에 있을때 그를 좋지않게 보는 사람이 많았고 필자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인권 암흑시대였던 신군부 정권의 권력실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은퇴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종전의 생각을 바꿔 그를 좋아하게 됐다. 인간적 의리나 도리를 지키는 것, 역할이 끝났음을 알고 물러선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이해와 관련있는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는 5·18특별법의 직접대상자도 아니었고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도 없었다. 그자신이 원하기만하면 얼마든지 정치의 중심부에 서서 영화를 누리고 「폼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정치에 있는 것은 노추(老醜)다』라는 말로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리며 과단성있게 무대뒤로 사라졌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됐는데도 편법·아부·상대방에 대한 음해와 배신 등 온갖 술수를 동원해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정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자신들의 주변을 둘러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진퇴를 분명히 하는 것은 아무나가 아닌 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李전대표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거물이라는 평가를 하게된 것이다. 물러날때를 알고 이를 실행하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퇴장이다. 자신의 역할이 이미 종료되거나 어떤 조직이 더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애착과 미련을 갖고 뭉그적거리면 본인의 망신과 불행은 물론 조직과 주변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멀리갈 필요없이 부하 손에 시해당하거나 국가경제를 위기에 빠뜨려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도 아직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전직 대통령들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기업을 망쳐놓고도 경영권에 집착하는 기업인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어제의 가치관이 오늘에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과거에는 최선이었던 것이 지금은 발전의 걸림돌, 심지어 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사관리의 근간으로 여겨졌던 연공서열과 평생직장 개념은 유물처럼 돼버렸다. 재벌체제가 우리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국가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혀 척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사회전반에 걸쳐 이런 변화의 속도와 주기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고 그때마다 이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관과 패러다임이 요구될 것이다. 변화의 바람은 먼저 정치쪽에서 불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창당, 공동여당의 합당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다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환경변화에 맞춰 조직개편등 구조조정이 끊임없이 이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다. 내가 왜 거기에 해당되느냐는 항변과 반발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해서 붙어있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그의 역할은 끝났는데. 새로운 일과 역할을 찾는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할 일이 없는데도 자리를 지키려는 추한 모습보다는 훨씬 나은 일 일것이다. 개인적으로야 앞이 캄캄하고 억울한 일이겠지만 내가 비켜서서 그동안 몸담아 온 조직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희생 아닌가. 치열하게 일하며 열심히 살고 때가 왔을 때 물러나는 연습을 해둘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퇴장을 위해. 李賢雨사회부장HU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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