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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무료식사제공 `거리의 천사' 유연옥씨

10월 중순이지만 용산역 앞 광장은 한강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매섭다. 아침 9시. 유연옥(30·여·서울 강남구 삼성동)씨는 휑한 광장을 가로질러 일명 「땡땡거리」 옆 4평짜리 판자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좁고 바람만 세게 불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이지만 하루 노숙자 600명분 밥을 지어내는 「하나님의 집」이다. 서둘러야한다. 동생이 밥은 짓고 있겠지만 국과 반찬 준비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오늘은 몇 명이나 늘었을까? 10시 반을 넘기면서 역 남쪽 모퉁이에는 줄을 선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기차표 예매를 위해 모여든 사람이면 좋으련만…. 그러나 모두 밥과 유씨를 찾아온 사람들. 많아야 100여명이던 인파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몇달새 600여명을 넘고 있다. 이 곳에서 거리의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짓기 시작한지 3년. 주변의 만류는 이제 절반의 포기와 절반의 강요로 바뀌었다. 그래도 해야한다. 『날마다 11시면 나를 기다리는 600여명과의 약속이 있습니다.』 내일이 없는 그들에게 밥과 유씨는 마지막 남은 「내일」이다. 유씨는 그들의 마음을 안다. 삶의 가장 밑바닥을 겪어본 까닭이다. 4년 전만해도 이벤트회사 대표로 두 아이, 남편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어느날 찾아온 허리통증. 병명도, 원인도 알 수 없이 하반신불구가 됐다. 몇 번이고 목숨을 끊어보려 했다. 병을 얻은 지 6개월만에 찾은 곳은 동네 앞 교회. 병만 나으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새벽 마다 부르짖은 지 넉달만에 그녀의 통증은 사라졌다. 이 때부터 그녀는 소년원과 고아원·양로원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에 매달렸다. 그러나 95년이 저물 때 고통은 몸에서 돈 문제로 옮겨졌다. 남편과 같이 매달린 회사는 부도가 났다. 당장 먹거리도 없었다. 96년 1월 그의 주머니에 남은 것은 단돈 1만원. 『그래, 마지막 돈으로 굶는 사람에게 컵라면이라도 대접하자』 그녀는 1만원을 손에 쥐고 용산역으로 나갔다. 추운 겨울 인적이 끊어진 용산역 광장 모퉁이에는 담요 한장을 덮어쓴 8순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발은 동상으로 썩어들어가고 담요 틈으로는 칼바람을 맞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약과 밥을 사드렸다. 그리고 내일 밥을 준비해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날부터 그 할아버지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쌌다. 이때부터 이벤트 일거리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알음알음으로 모여드는 사람이 늘어났다. 5명, 10명, 50명, 100명. 도시락은 식판 위의 정식으로 바뀌었다. 역 남쪽 땡땡거리 앞에 4평짜리 월세방을 얻어 밥 짓기에 나섰다. 밥을 찾아 용산역 광장으로 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벤트 행사장에서 목이 쉬도록 일해 한달에 버는 돈은 200만원 남짓. 몽땅 밥에 쏟아부었지만 고생은 갈수록 심했다. 아픔은 육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역주변의 핍박이 감당키 어려웠다. 역광장의 매점, 역 관계자들, 청소원까지 『지저분한 사람을 몰고 다닌다』며 역에서 내쫓기 일쑤였다. 밥짓는 집이 너무 좁아 옮기려해도 임대해주는 사람이 없다. 노숙자들이 얼쩡거릴까봐서다. 사람이 늘어나며 빚에 쪼들리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는 식사비용을 대기위해 계속 빚을 얻은 까닭이다. 감사를 모르고 빨리 밥을 달라는 노숙자에다 술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밥 한끼 주는 것은 작은 일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길거리에서 자고 무료급식소에서 밥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죽기 보다 싫다』는 노숙자의 이야기를 늘 듣는다. 『밥먹을 때 줄서게 만드는데 6개월이 걸렸다』는 유씨는 『일용잡부로 받은 일당을 밥짓는데 보태라고 내미는 노숙자가 하나 둘씩 늘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1,000원에서 5만원까지. 돈 때문이 아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삶의 의욕을 잃은 「밥식구」가 잡부일지라도 다시 일을 하고 희망을 갖게 됐다는데 있다. 지칠 때마다 그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이 말릴 때 직장을 그만두고 같이 밥짓기를 자청한 동생 영옥(英玉)씨. 컴퓨터 조립·판매업을 하며 용산에 컴퓨터 부품을 사러왔다가 사업까지 포기하고 합류한 이동원(李東元·28)씨.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이따금씩 성금을 보내주는 200여명의 숨은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들. 전국 어느 곳에서든 시간과 노동·성금으로 봉사하는 사람은 모두 그녀의 동반자다. 『용산역 외에도 무료급식일을 하는 곳이 서울에서만 10여곳에 이릅니다. 노숙자 상담소부터 쉼터에 이르기까지 이웃을 돕는 사람은 모두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다. 두아들 승민이와 승환이는 거리식당의 최고참. 지난달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 승민이를 역 인근 한강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자원봉사자라도 있는 용산역이 낫기 때문이다. 승민이는 동생 승환이와 땡땡거리 판자집에서 산다. 유씨는 요즘 더 바빠졌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저녁 10시면 음료수를 갖고 서울역을 찾는다. 그 곳의 노숙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관심과 공감이 밥 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녀는 평범한 주부로 살고 싶다.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다.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하고 바라보는 사람과 후원자들, 점심 때면 찾아오는 노숙자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희생이 그녀의 삶이고 기쁨이 됐다. 유씨가 바빠지고 그를 돕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사회의 그늘이 넓다는 얘기다. 그래도 그들 덕분에 IMF가 조금은 덜 아프다. 『빨리 경제가 회복돼 용산역에서 밥먹는 사람이 100명 미만으로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바램이다. 【이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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