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가격 급등으로 절대적인 가계부채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이른바 '깡통 전세' 등으로 부채의 질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탓이다.
현재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대책의 골자는 전월세 대출 한도를 늘리는 내용이다.
당장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을 독려해 월세대출자의 신용등급을 6등급에서 8등급까지 올렸다. 1~10등급까지인 신용등급 중 9~10등급은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에 가깝다. 그 바로 위 등급까지 대출을 해주라고 종용하는 셈이다. 금융공공기관의 관계자는 "대출해주지 말아야 할 가계까지 돈을 빌려주라는 분위기"라면서 "아무리 정책적 목표가 있다고 해도 기존 설계까지 하루 만에 뒤집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재 가계부채 상황은 양과 질 모두 나빠지고 있다.
2011년 말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3%로 미국(120%), 일본(132%)등 선진국보다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중 7위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질이다.
2007년 이후 고금리인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가 급속히 커졌다. 2008년에 비해 2013년 3월 가계대출 증가율은 비은행이 51%로 은행(19%)의 3배에 달한다. 여러 금융기관에 돈을 꾼 다중채무자 중 비은행권만 이용하는 비중도 3월 말 현재 약 18%다.
50대의 악성 대출이 늘어난 점도 특징이다. 자녀의 결혼이나 창업으로 지출은 많지만 은퇴한 탓에 소득이 주는 50대 이상의 가계대출이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대출 환경도 나빠졌다.
2006년까지 뛰었던 부동산 값이 6년 넘게 떨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자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담보가치가 대출금을 넘어 담보를 팔아도 빚을 못 갚는 '깡통주택'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반영하는 금융회사 평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2008년 말 47%에서 2012년 말 50%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저축은행이 LTV를 80% 이상 초과 대출하다 금감원 검사에서 드러나는 등 위험한 대출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 중 72%(은행권 기준)가 원금상환은 고사하고 이자만 내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고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늘었다.
가계부채 증가는 장기간 이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선뜻 손을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늘었다. 특히 2005~2006년 부동산 경기 과열로 빚을 내 집사는 풍토가 자리잡았다. 2008년 금융위기에 다른 나라는 불어난 가계 빚을 고통 속에 줄였지만 우리는 정부 차원으로 대출확대 정책을 펴면서 가계부채 구조조정 기회를 놓친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2010년 당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른 채 가계 빚을 떠받쳐주면서 정부가 대책을 세울 기회를 놓쳤다"면서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이미 한 발 늦은 뒤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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