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금융감독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동양그룹은 2010년 4월 감독당국이 지정하는 주채무계열에서 빠졌다. 금융감독원은 매년 금융권의 총 신용공여액 중 0.1% 이상인 그룹을 주채무계열로 지정하고 주채권은행으로 하여금 재무구조개선약정 등을 맺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동양 계열사들은 회사채와 CP 등 시장성 차입을 꾸준히 늘리면서 금융권 여신은 2009년 말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금액인 1조3,946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동양그룹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고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채무계열 제외는 감독당국이나 채권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실제 동양은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난 이듬해 산은과 재무구조약정을 갱신하지 않고 자체 구조조정으로 돌아섰다.
주채무계열에서 빠진 직후 시장성 차입을 빠른 속도로 늘렸다.
현 위기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당국이 이를 알고도 사후약방문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시장을 면밀히 들여다본 당국은 지난해부터 동양그룹의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위기설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로 손대지 못했다.
특히 지금도 동양파이낸셜대부 등 계열사를 통한 편법 자금조달을 막을 수단이 없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크게 터져야 규제를 신설할 수 있는 것"이라며 "동양 같은 소수의 사례 때문에 다른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을 사전에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난 기업에 대해 감독당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월권으로 비쳐질 수 있다"면서 "은행 대출과 시장 차입 중 어느 것을 늘리느냐는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책임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설업과 레미콘 등 동양 주력계열사의 업황이 좋지 않자 채권단은 동양에 대한 신규여신을 중단하고 만기가 돌아온 여신은 회수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만 집중했다. 동양의 금융권 여신이 줄어든 것은 시장성 차입 확대 탓도 있지만 돈줄을 죈 은행들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양 계열사에는 이렇다 할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기업이 없다"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여신을 줄여야 했고 자연히 시장성 차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감독당국은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동양이나 현대그룹처럼 금융기관이 아닌 회사채나 CP 등 시장성 차입이 많아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난 기업으로까지 감시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전체 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인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을 0.1% 이하로 낮추거나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대기업을 모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시장성 차입금의 50%를 금융권 여신으로 환산해 평가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하지만 사태가 터진 뒤에야 대책을 내놓는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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