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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받는 한국외교/임웅재·정경부(기자의 눈)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의 북경출발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가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보안의식 불재」 때문인 것으로 밝혀져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외무부 고위당국자는 17일 언론사 편집국장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황비서가 한국으로 오기전 2주∼한달가량 머물 제3국 거처에 대해 언론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황비서의 북경출발이 늦어지는 이유가 한국 언론들의 자극적인 보도에서 비롯됐다는 이유에서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이 우리 언론보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면밀히 체크해 우리 정부와의 협상에 임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한국 정부와는 비밀접촉이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주초 황비서가 떠나는 것으로 양측의 합의가 있었지만 (황비서가 17일께 싱가포르로 향할 예정이라는) 언론보도로 (추진이)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판단 때문인지 그는 『(자극적 언론보도 등) 별 문제가 없다면 금주중 (황비서의 제3국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황비서가 중국을 빨리 떠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언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황비서를 변절자로 규정, 「갈테면 가라」는 뜻을 표명했지만 속마음이 다른 만큼 중국측에서 이번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길 희망하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그동안 정부 당국자들이 누누이 되풀이 해온 말이다. 외무부 고위당국자의 이날 발언은 부분적으로 옳은 평가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언론이 황비서의 망명 경유지로 꼽은 싱가포르, 필리핀 등의 이름이 외무부와 외무부출신 청와대 고위당국자 등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언론사 간부들에게 불만을 제기하기 전에 중국 정부에 믿음을 주지 못한 한국 외무부를 대표해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언론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외교가 외국 정부에 신뢰감을 줄 수는 없다. 보안의식 불재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떼어내려는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뼈를 깎는 자성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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