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연이은 질책에 은행들이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은행ㆍ씨티은행 등이 고금리 신용대출에 메스를 대기 시작한 것인데 조만간 금융권 전체로 대출금리의 미세 조정 움직임이 확산될지 주목된다.
일단 4대 금융지주 중 국민ㆍ신한ㆍ우리 등을 제외한 하나금융그룹만이 정부의 금리 단속에 호응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은행들은 신용대출금리를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의 상징처럼 바라보고 있는 금융감독 당국의 시각에 비판적인 기조를 띠고 있다.
실제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추세적으로 정착한 상황에서 6%대의 신용대출금리는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소비자 보호의 취지를 이해하지만 너무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혀 감독 당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이 대출금리를 낮추는 등 '성의'를 보임에 따라 손을 놓고 있던 다른 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치열해지고 있는 은행 간 경쟁구도와 선거 정국 아래 더욱 몰아칠 수밖에 없는 금융 당국의 입장 등을 두루 감안하면 도미노식 대출금리 인하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법인ㆍ일반 고객 연계, 전결금리 동결로 금리인하=대부분의 은행들이 "금리를 내릴 여지가 없다"며 볼멘소리를 토해내고 있지만 머리를 쓰면 방법은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씨티은행은 자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는 기업의 임직원들이 마이너스 대출을 할 경우 할인 금리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법인 고객을 지렛대 삼아 일반 리테일 영업을 확대할 수 있고 기존 기업 고객의 로열티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하나은행은 신용대출금리와 관련해 고무줄처럼 적용돼왔던 전결금리 제도를 손본다.
지점장 전결금리는 말 그대로 영업점장이 거래 실적 등에 따라 소비자의 대출금리를 감면하거나 붙이는 것을 뜻하는데 사실상 가산금리를 말한다.
하나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에서 가져가는 금리 마진 조건이 모호한 측면이 있는데 이를 명확히 하는 식으로 금리를 조정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대출금리 상품의 조건이'마진 0.5% 이상'일 경우 영업점에서는 고객에 따라 0.7%, 0.8% 등으로 가산금리를 더해 왔는데 이를 없애고 '마진 0.5%' 등으로 기준을 분명하게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은행도 이전보다 금리를 낮춘 대출 상품을 출시해 고객 확보에 나선다.
◇타 은행들, 불만 속 고민 깊어질 듯=아직 금리 조정 의사가 없는 은행들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서슬 퍼런 금융 당국의 괘씸죄에 걸릴 소지가 있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반 국민들의 눈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현재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관련 조치가 없다"고 못 박기보다는 "더 지켜보겠다"며 여차하면 움직일 태세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집중 단속하다 보니 신용대출이 늘었고 그 결과 금리가 6~7%로 조금 높았다"며 "그런데 이를 두고 은행이 폭리를 취한다고 하면 곤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가 소비자 대출, 그중에서도 서민 대출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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