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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리자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한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대한 아쉬움이 담겼다. 지난 1966년 등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이 성공적으로 부활한 기쁨도 녹아 났다.
17일 서울 동숭동에서 만난 박용호(45ㆍ사진) 뮤지컬해븐 대표는 "대본과 음악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주인공 비중을 확대하고 장면 전환 템포를 바꾸는 등 아날로그 안의 첨단 조명과 기술들에 관객들이 충분히 스며들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살짜기 옵서예'는 4만명 이상의 관객이 찾으며, 객석점유율 85%라는 성공적인 기록을 남겼다. 세련되게 변주된 음악과 연출, 3D 매핑(입체감 있는 물체에 영상을 덧씌우는 기법)과 홀로그램을 활용한 볼거리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는 평가다. 무대 위 4m 높이의 돌하르방은 3D 매핑 기술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7억원의 콘텐츠진흥원 동반성장 영상 지원금이 투입된 작품이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 쓰지 않는 풀HD 프로젝터를 9대나 쓰면서 협업을 통해 관객들이 영상인줄 모르고 보도록 했다"고 밝혔다.
성악과 출신으로 삼성영상사업단, SJ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친 박 대표는 우리나라 뮤지컬 기획자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는 "제가 원하는 작품을 골라 배우ㆍ스텝들의 협업을 이끌며 책임지겠다는 생각에 지난 2004년 뮤지컬해븐을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첫 작품인 '메노포즈'는 폐경기 여성의 고민을 코믹하게 담아 주부관객을 사로잡았다. 2007년부터 '김종욱 찾기', '알타보이즈', '스위니 토드', '쓰릴 미' 등이 인정받으며 박 대표와 뮤지컬해븐의 색깔이 분명해졌다. 그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선에서 파격적인 작품을 많이 올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창작뮤지컬 분야는 선구자라 불릴 정도다. 대표적으로 '김종욱 찾기'는 5년간 매출 10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이후 창작뮤지컬 확대의 원동력이 됐다. 지난 11일부터 올해 새롭게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연일 전석 매진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매년 무대와 배우가 바뀌면서도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고, 세련된 디테일이 관객들을 무장해제하고 웃을 수 있게 한 것 같다"고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그는 "성공사례가 나오니 창작에 흥미가 생기고 노하우가 쌓였다"면서 "작품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개성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최근에는 아이돌 없이 박칼린, 남경주 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를 앞세워 막을 올린 브로드웨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도 인기가 높다. 평범해 보이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 채 각자 다른 이유로 생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박 대표는 "뮤지컬은 대개 춤, 노래와 같은 테크닉 위주의 공연으로 이뤄졌는데 뮤지컬이 볼거리 위주 공연만이 아니라 연극 못지 않은 작품도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뮤지컬해븐은 'K-뮤지컬' 전파에도 적극적이다. 한일 공동으로 일본에서 매년 '쓰릴 미'를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 특히 박 대표는 "2015년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아주 유명한 만화영화를 소재로 한일 공동으로 준비하는 작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박 대표는 "어떤 작품이 잘 되면 트렌드성으로만 붐이 일어난다"고 꼬집었다. 실제 '김종욱 찾기'가 소위 대박을 내자 폭발적으로 뮤지컬이 늘어났다. 공연은 현재 200여개에 이르고 그러다 보니 가격 덤핑 문제로 이어졌다. 배우는 부족하고 제작비는 올랐는데 공연장과 공연관계자가 늘어 경쟁이 치열하니 뮤지컬 시장에도 성장통이 크게 온 셈이다. 그는 또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많이 여는 문화행사를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고 자주 해야 한국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정립돼 한류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박 대표는 해븐표 뮤지컬 마니아들에게는 "작품을 보고 감동을 나누시되 공연장 안에서만 행복을 느끼지 말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알리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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