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가 더 빠질 겁니다. 원유트레이딩팀에서는 원유 구매를 좀 더 줄여주시고 판매부서는 재고량을 기존의 80%까지 낮춰주세요."
7일 열린 현대오일뱅크 원가절감 CFT(Cross Functional Team·상호기능팀) 회의에서 오간 내용이다.
유가 하락세로 재고관리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요즘 현대오일뱅크는 재고 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0원에 원유를 구입해 휘발유·경유 등을 만들었는데 그 사이 유가가 떨어지면 제품값 역시 하락한다. 이 때문에 "유가 하락기에는 유류 제품이 탱크에 저장돼 있는 것 자체가 손실"이라는 것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의 이야기다.
'재고와의 전쟁'에서 기본 원칙은 원유를 적게 사들이고 제품은 빨리 파는 것이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유가 하락기가 오면 원유 구입량과 공장 가동량을 신속히 줄이고 쌓아둔 재고를 최대한 빨리 국내외에 판매한다. 수출 일정을 앞당겨 원유와 제품 재고를 기존의 80~85% 수준까지 낮춘다. 재고를 줄이다 보니 주유소 물량이 몰리는 월말에 제품이 모자라는 사태도 빚어진다.
다른 정유사들도 마찬가지다. GS칼텍스의 한 관계자는 "보통 장기 계약을 통해 원유를 구매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최대한 사들이는 양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줄고 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원료 구입을 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의 수출 다각화 노력도 이 같은 때 빛을 발한다. 한 군데라도 더 수출 대상을 늘려놓아야 재고 처리가 시급한 때 구매 의사를 타진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재고관리가 하반기 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더욱 재고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원유를 주문하고 국내로 들여와 다시 제품으로 판매하기까지 다 합하면 세 달 정도 걸린다"며 "하루에도 유가 등락폭이 높으면 10%까지 변동하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타이트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고관리뿐만 아니라 각종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장기계약으로 사들이는 원유 외에 시장에 풀리는 저가의 '스팟 물량'을 구입해 재고 단가를 줄인다. 재고관리 태스크포스(TF)와 유가 TF가 상시 협력,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밖에 제품 가격이 추가로 하락하더라도 원래의 가격으로 팔 수 있는 파생상품을 계약하는 정유사들도 있다.
정유 업계는 올해 전체 실적 개선을 통해 지난해의 악몽을 만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총 1조5,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반전에 성공했지만 유가 하락으로 하반기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40달러대까지 급락했던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올해 다시 60달러대를 회복했으나 최근 다시 40달러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정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유가가 배럴당 25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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