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요즘 부쩍 '치열함'과 '승부근성'을 강조한다. 올 들어서도 '글로벌 CEO 전략회의' '신임 임원과의 만찬' 등의 행사에서 잇따라 '1등 LG'가 돼야 한다며 '독하게, 치열하게 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LG전자가 스마트폰 대응 실기로 어려움을 겪은 후 '인화'를 강조해온 LG 조직문화에 '독한 승부근성'이 더해졌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LG그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승부사 기질을 지닌 인재를 최고경영진으로 중용할 정도로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특히 LG그룹의 모태이자 양대 축인 LG화학과 LG전자 출신을 주요 계열사에 두루 배치해 선후배들이 인연을 맺으며 매끄러운 팀워크를 이루는 동시에 무섭게 경쟁하면서 조직을 이끌도록 하고 있다. ◇'인재 사관학교' LG전자ㆍ화학 출신 다수=현재 LG그룹의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 29명 가운데 19명(65.5%)이 화학 또는 전자 출신이다. 구 회장을 보필해 그룹 경영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4명의 부회장 중에서도 3명이 전자ㆍ화학에서 배출됐다. 부회장군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사는 강유식(63) ㈜LG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그는 구 회장과 ㈜LG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아 최측근 핵심 참모로서 그룹의 브레인(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972년 LG화학에 입사해 LG전자ㆍLG반도체 등을 거친 뒤 1998년 LG구조조정본부 부사장, 이듬해 구조조정본부장에 발탁돼 그룹의 구조조정, 공동 창업주 가문의 계열분리,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 등 난제를 순조롭게 풀어냈다. 일에 대해서는 '원칙과 정도(正道)'를 강조하는 외유내강(外柔內剛)형으로 최근에는 LG그룹의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구 회장의 동생이자 지난해 10월부터 LG전자의 새로운 사령탑이 된 구본준(60) 부회장은 LG전자ㆍLG화학ㆍLG반도체ㆍLG디스플레이ㆍLG상사 등 LG 주력계열사에서 임원과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치며 주요 사업을 이끌었다. 특히 약 25년을 전자 비즈니스 분야에 몸담아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과 제품에 대한 통찰력이 남다르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위기에 놓인 LG전자를 구해낼 '구원투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같은 평가 때문이다. LG화학을 이끌고 있는 김반석(62) 부회장은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화학회사에만 줄곧 몸담은 정통 화학맨이다. LG석유화학ㆍLG대산유화 등 주요 화학계열사 CEO를 지내고 2006년 LG화학의 지휘봉을 잡았다. 김 부회장은 '남보다 먼저, 남보다 빨리, 남보다 자주'라는 '스피드 경영'을 앞세워 당시 적자를 내고 있던 회사의 '턴어라운드(실적개선)'를 이끌었다. 특히 2차전지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 볼보ㆍGMㆍ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하는 성과를 냈다 권영수(54)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은 LG전자 해외투자실ㆍ미주법인ㆍ세계화담당 등을 거쳐 재경부문장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하는 등 LG전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글로벌 감각을 갖춘 재무통으로 꼽히며 2007년부터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맡아 글로벌 디스플레이업계 1위 달성을 견인하고 있다. 조준호(52) ㈜LG 대표이사 사장도 LG전자 해외영업, MC사업본부 북미법인장을 지낸 LG전자 출신이다. LG의 화학계열사인 LG하우시스의 한명호(52) 대표이사 사장은 1983년 LG화학에 입사해 상하이무역법인장ㆍ산업재사업본부장을 거쳤다. 박규석(58) 서브원 대표이사 사장도 1978년 LG화학에 들어와 뉴욕지사, 미국판매법인장 등을 거친 후 서브원 수장이 됐다. ◇한 우물 판 '전문가'형도 중시=LG그룹의 또 다른 인사 특징은 한 분야만 파고 든 전문 경영인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삼성의 경우 제조업 출신의 CEO를 금융계열사로 배치하는 등 파격적인 인사를 종종 단행하기도 하지만 LG는 전혀 새로운 분야로 발령하는 경우가 드물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마땅하지 않다면 외부에서의 수혈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전문 경영인체제를 중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초 LG유플러스 대표이사로 영입한 이상철(63) 부회장이다. LG그룹의 통신3사인 LG텔레콤과 LG데이콤ㆍLG파워콤 등 3곳이 합병해 출범한 이 회사의 초대 CEO로 부임한 이 부회장은 KTF 사장, KT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통신 분야 전문가다. 그는 LG유플러스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통신업종의 틀을 깨는 탈(脫)통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 나서고 있다. 차석용(58)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 역시 외부 출신이다. 미국 뉴욕주립대ㆍ코넬대 MBA 출신으로 글로벌 생활유통 브랜드인 P&G에서 잔뼈가 굵은 유통 분야 전문가다. 한국P&G㈜ 사장과 해태제과 대표이사를 거쳐 LG생활건강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금은 LG생활건강이 인수한 코카ㆍ콜라음료와 페이스샵 대표이사까지 겸직하고 있다. 하영봉(59) LG상사 대표이사 사장도 1987년 LG상사에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 정통 'LG상사맨'이다. 인도네시아지사장ㆍ홍콩지사장ㆍ일본법인장 등 해외지사와 법인을 맡아 해외 사업을 주관했다. 2004년부터는 자원원자재부문장을 맡으며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주도했다. 2002년 이후 10년째 LG이노텍을 책임지고 있는 허영호(59)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도 전자 관련 분야에서만 30년 이상 한 길을 걸어온 장수(長壽) CEO 가운데 한 명이다. 1977년 LG전자에 입사해 20여년을 근무한 후 2000년 LG마이크론 대표이사를 지냈다. 지난해 말 LG그룹의 광고마케팅 전문지주회사 지투알(GⅡR)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김종립(55) 대표는 1982년 LG에 입사한 이래 29년간 광고업 한 길을 걸어온 전문 광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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