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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벤처인 열전/WCS] 정연태 사장 인터뷰
입력2000-01-25 00:00:00
수정
2000.01.25 00:00:00
미국 통신업계의 공룡이 참여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다른 통신회사들은 겁을 먹고 감히 경매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때문에 미국 최대 무선 주파수 권역은 무풍지대로 남아있었고, 경매가격은 입찰 마감이 가까워 지는데도 50만달러의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런데 이 무모한 게임에 재미 교포 한 사람이 도전했다. 다름 아닌 '전파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재미 실업가 정연태(鄭然泰·43) 박사였다.
정박사는 부인 이름(정원정)으로 뉴욕지역 주파수 경매에 참여하면서 500만달러를 불렀다. 벨애틀랜틱과 나이넥스 컨소시엄이 부른 가격의 10배나 되는 값이었다. 두 전화회사가 겁을 먹고 더 높은 값을 불렀다. 그러자 정박사는 그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벨애틀랜틱과 나이넥스의 컨소시엄은 전문가 10명으로 경매팀을 구성, 바어하는데 비해 정씨는 혼자서 복잡하고 어려운 경매 방식을 공부해 컴퓨터 앞에서 싸웠다. 50만 달러에서 시작된 주파수 경매가격은 금새 1,860만 달러까지 불어올랐다. 당시 정박사는 여러곳을 수소문해 벨애틀랜틱 컨소시엄이 확보하고 있는 자금이 1,500만 달러 정도임을 감지했다. 그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낙찰되면 오히려 큰일이었다. 정박사는 슬그머니 입찰에서 빠져나왔다. 벨애틀랜틱과 나이넥스는 오를대로 오른 가격으로 뉴욕지역 주파수를 사야했다.
그는 『당시 일을 회고하면 무모했던것 같다』며 『그렇지만 그 일로 나는 돈한푼 안들이고 미국 통신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뉴욕 경매에서 빠져나와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손을 댔다. 로스앤젤레스 주파수 가격이 6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로 폭등했다. 그는 또 손을떼서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샌프란시스코 주파수 가격이 60만 달러에서 600만 달러로 올랐다. 미국 정부가 경매에 부친 무선 주파수는 모두 493개 회선.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선 '정원정'이라는 이름만 화면에 뜨면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때 정씨는 자신이 점찍어둔 곳에 들어갔다. 펜실베니아주 알렌타운과 푸에리토리코였다. '정원정'이 경매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지역에 비해 3분의 1 가격으로 두곳의 주파수 입찰에 성공했다. 펜실베니아에선 60만 달러, 푸에리토리코에선 72만 달러로 모두 132만 달러에 미국 주파수 2개 지역을 할애받았다.
그런데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는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사업성을 설명하며 투자 유치활동을 벌였다. 뉴욕 금융시장은 장래에 비전이 있으면 언제라도 돈을 끌어들일수 있는 곳이다. 그는 베짱 두둑하게 225만 달러를 유치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경매에 참여해서 따낸 사업권(라이선스)을 275만 달러로 계산해서 지금의 '와이어스 케이블TV 시스템(WCS)'이라는 자본금 500만 달러의 법인을 세웠다. 그에게는 '봉이 김선달'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무일푼으로 경매에 입찰, 미국에서 길목 좋은 권역의 주파수 두개를 얻어냈고, 그 사업성과 소프트웨어를 근거로 월가에서 자금을 유치, 회사를 차렸다. 그의 재주가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것과 다를게 없다는 뜻에서 나온 별명이다.
그는 뉴욕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번듯한 사무실을 얻어 전파사업을 하고 있다. 정박사는 『기술이 어느방향으로 가는지를 알고 있으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쉽다』고 말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다운 대답이었다.
그는 경북 울진 출신으로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1980년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시티븐 공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오일 컨설팅 회사인 GMC-제네스트에서ㅓ 컴퓨터 분야에서 이사로 2년간 일하며 컴퓨터 핵카드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자신의 기술을 밑바탕으로 이 회사가 투자한 MCC란 자회사의 공모주 33%를 받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때 아래아 한글 소프트웨어의 밑바탕이 된 '메일 매스터'란 범용 패키지를 미국 시장에 내놓아 미국은 물론 한국을 놀라게 했다. 정사장은 이때부터 한국 정부의 제의를 받아 국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한국 정부기관및 연구소를 대상으로 초청강연을 해왔다.
그러던중 1992년 앨고어 부통령의 초고속 정보망 프로젝트 추진계획을 보고 그는 『미국이 앞으로 정보통신 관련 산업을 육성, 일본에 뒤진 경제를 재건하고자 하는 구나』하는 비전을 꿰뚫었다.
그는 요즘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에 한국 무선 CATV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포머스커뮤니케이션사의 투자를 얻어냈다. 여기서도 그는 자신의 기술과 라이선스를 토대로 지분 51%를 유지하고, 미국 투자자들에게 지분 49%를 주며 2,600만 달러를 유치함으로써 또한번 정보통신업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시 한구절을 읊었다. 『만리풍취 산부동이요, 천년수적 해무량이라』만리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산은 움직이지 않고, 천년의 세월동안에 강물이 모여들어도 바다를 채울 수 없다는 뜻이다. 컴퓨터와 주파수 등 최신의 기술로 무장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미국땅을 주름잡으며 하는 선문답이었다.
뉴욕=김인영특파원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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