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해고 관련 규제 벽 높아 노동경쟁력 세계 최하위 수준
개혁 시도 때마다 파업에 시들… 당국 "노사정위 합의가 우선"
정부가 정규직 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규직 해고를 좀 더 쉽게 하겠다는 의미다.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는 개선한다. 기업의 투자심리를 해치지 않되 노동 유연성은 현재보다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탄력적인 근로시간제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해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24일 내년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한 사전 브리핑에서 "인력 부분 구조개혁은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함께 고용 유연성이 균형을 잡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며 "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이루는 동시에 고용 유연성을 강화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질병으로 꼽히는 경직된 노동시장에 메스를 대는 방안을 꺼내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다음달 중순께 발표되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이 같은 내용의 노동대책을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대책의 골자는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는 내용일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노동계의 강한 반발 등이 예견돼 정부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뤄야 할 부분이라 정부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이렇게 간다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서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포문을 열어놓은 상태다. 최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구조개혁을 하는 데 노사 문제가 키(key)"라며 "독일의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아일랜드 모델이 바로 그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정년이 60세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냐"며 "이 부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고용의 유연성 강화와 관련된 발언들을 내놓기도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모델로 제시한 독일과 아일랜드 방식은 미세한 차이는 있다. 독일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골자고, 아일랜드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도록 하는 제도를 안착시켰다. 독일과 아일랜드의 모델을 준용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구조개혁을 위해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데, 사용자에게 고용 후 일정 기간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파격적인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독일은 사용자가 6개월 동안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해 채용한 인력을 검증할 수 있다. 반면 현행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수습·인턴제도 등을 통해 정규직의 정리해고 기간을 3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정리해고 가능 기간을 현재보다 더 늘리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는 이유다. 정부는 이뿐 아니라 노사가 사업장 실정에 맞도록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시행할 수 있지만 적용기간이 짧아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은 전체의 6~7%에 불과하다. 기간을 1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이다. 이와 함께 임금피크게 활성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제94조의 취업규칙 불이익 조항도 개선하는 카드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 당국 구조개혁의 의지가 노동계를 넘을 수 있느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다양한 노동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노조의 총파업 등으로 개혁이 흐지부지됐었다. 1998년 첫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 제도를 도입했지만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정리해고가 쉽지 않았었다. 심지어 비정규직 보호대책, 정년 60세 법제화, 대체휴일제, 통상임금 확대 등 이후 2000년대 들어 도입된 노동시장 개혁조치도 노동 유연화와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꺼낸 데는 노동 유연성 확보를 미룰 경우 노동시장의 경직성 탓에 저성장구조가 고착되고 있는 한국경제에 더 큰 질곡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또 우리나라의 노동경쟁력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 경직된 노동시장이 우리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됐다.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가 2012년 내놓은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고용시장 유연성 순위는 2000년 58위에서 2003년 81위, 2012년엔 133위까지 떨어졌다. 근로자 채용과 해고가 어렵게 노동관련 규제가 많아 고용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는 "노동 규제에 관한 한 한국은 저개발 국가들과 비슷한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며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 부문에서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포르투갈에 이어 2위를 기록한 정도로 경직성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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