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되돌아본 98경제] 금융기관 구조조정

은행도 망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고 있다. 98년 한해 국내 금융기관들은 말그대로 미증유의 경험을 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은행이 하루아침에 셔터를 내리는 모습을 목도했다. 온실속 화초로 비유되던 은행원 수만명이 길거리로 나앉았다.그러나 지난 한해는 「기회의 해」이기도 했다. 수십년간 문드러진 썩은 피를 깨끗하게 정화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합병과 퇴출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새정부들어 개혁의 성과가 가장 먼저 가시화한 분야라는 평가를 듣게 됐다. 영욕(榮辱)의 한해, 국내 금융기관이 걸어온 98년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 금융기관들의 달라지는 모습을 미리 그려본다. ◇상식이 뒤흔들린 한해=지난해초까지만해도 「은행이 망한다」라는 말은 한마디로 상식밖이었다. 이를 믿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말은 일반 상식이 됐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뒤바뀐 셈이다. 금융기관 퇴출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와 동시에 도래했다. 지난해 12월 14개 종합금융사의 전격적인 영업정지, 그리고 두달후 10개사 폐쇄. 그러나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6월29일. 드디어 은행도 망했다. 증권과 투신, 보험 등 부실 금융기관이라는 딱지가 붙은 곳이면 어디든 문을 닫았다. ◇짝짓기만큼은 이미 선진국 수준=지낸해까지만해도 국민들은 금융기관간 합병이란 말에 그다지 익숙치 않았다. 그저 외신을 통해서만 간헐적으로 들어오던 남의 나라 일이었다. 98년 한해 한국민들은 이를 몸소 체험했다. 지난 7월31일 상업과 한일은행간 짝짓기로 시작된 대형은행간 합병은 조흥-강원은행간 합병선언까지 4건이나 성사됐다. 자산규모 100조원을 넘어서며, 외형에서는 이미 슈퍼뱅크로서의 틀을 갖추었다. 짝짓기 바람은 2금융권에까지 확산됐다. 보험권에서는 한국과 대한, 두 보증보험사가 합병, 서울보증보험으로 재탄생했다. 서민금융기관의 합병붐은 더욱 거셌다. ◇철밥통의 시대는 지났다=금융기관 직원들의 의식은 1년새 완전히 탈바꿈했다. 평생직장은 구시대의 유물로 변했다. 온실속에서 시키는데로 따라만하는, 그래도 잘리지 않는 「철밥통의 시대」는 사라졌다. 서울·제일은행과 7개 조건부승인 은행에 소속돼 있던 1만여명의 은행원이 떠난 것은 대표적 예. 신용평가기관인 한국신용정보에 따르면 은행원 10명중 7명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 잇따른 퇴출 속에서 은행지점장이 노숙자로 전락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한국사회에 뿌리박힌 연공주의를 뿌리채 뽑아냈다. 이제 금융기관에 그저 월급이나 벌어먹는 상황은 끝났다. 은행들은 당장 내년부터 연봉제다, 성과급제다 하면서 철저하게 소속원의 실적을 따진다. 인맥은 통할 여지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고객도 변했다=금융기관을 상대하는 고객들의 의식도 1년만에 180도 변했다. 고객들은 이제 더이상 고수익만을 지 않는다. 전격적인 종금사 영업정지에 닫혀진 셔터문을 붙들고 우는 할머니의 모습은 언제 우리의 현실로 다가설지 모르게 됐다. 수익률(금리)이 높은만큼 위험도 크다는 말이 평범한 진리로 다가왔다. 안전성이 재테크 제1의 원칙으로 자리한 셈이다. ◇외국인의 물결이 거세진다=「우리만의 세상」은 끝났다. 구조조정의 바람을 타고 외국 금융기관들은 너나없이 달려들고 있다. 이미 2·3금융권 일부는 외국 금융기관의 손에 넘어갔다. 얼마후면 은행도 외국인 것이 된다. 내년에는 보다 또다른 풍경이 펼쳐질 전망이다. 구조조정 이후 외국인들은 달라진 한국시장을 보고 앞다퉈 진출할 게 뻔하다. 케케묵은 경영방식으로는 외국계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슈퍼뱅크에서 리딩뱅크로=정부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다. 합병은행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했다. 정부가 국민의 엄청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혈세를 쏟아부은 것은 단순히 부실금융기관을 살리자는 목적은 아니다. 외국 금융기관에 버금가는 「선진국 수준」의 금융기관을 국내서도 만들어보자는 의도다. 슈퍼뱅크가 클린뱅크, 더나아가서는 리딩뱅크가 될 수는 없다. 리딩뱅크는 말그대로 모든 금융기관의 모범이 되는 곳을 말한다. 국내 금융산업을 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 금융기관이 앞으로 해야할 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금융기관들은 이제 구각(舊殼)을 완벽하게 깨뜨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기영(鄭琪榮)삼성금융연구소장은 『체계적 여신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먹구구식 경영방식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이런 면에서 『올해 털어낸 부실은 모두 털어내고 내년부터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일부 은행들의 발상은 신선하다. 은행의 변모가 주목된다. 【김영기 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