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다. 그래서 시골 청년들은 영화배우로 성공을 꿈꿨지만 엑스트라가 됐다. 주역과 엑스트라의 거리는 마치 귀족과 천민만큼이나 멀었다. 영화판은 이들이 생각했던 그런 꿈과 낭만을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엑스트라는 인간적인 대접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삭막했다. 영화로 성공을 꿈꾸던 철구가 엑스트라에서 잘리자 주머니에 돌을 한 가득 넣고 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철구의 죽음으로 마을은 뒤숭숭하기만 한데 감독과 조감독은 촬영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에 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시골청년들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메가폰을 잡고 크랭크 인에 들어간다. 무수하게 많은 배역들이 등장하는 듯한 ‘주머니 속의 돌’은 단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코믹 연극. 첫 등장은 영화감독이 꿈인 현실적인 남자 김갑택과 순박한 청년 황진구로 무대에 서지만 모자 하나로 여주인공 나주리가 되고 지팡이만 짚으면 70대 할아버지가 또 선글라스만 쓰면 감독이 된다.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을 자유로운 표현형식으로 경쾌하게 풀어낸다. 두 사람은 분장실 없이 무대에서 간단한 소품 하나로 8.5인의 역할을 너끈히 소화해내며 관객들을 연극적인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배우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배역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연기를 하고 관객들은 알면서 모른 채 이야기의 줄거리를 더듬어 간다. 이 작품은 2005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동명의 원작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일랜드 어느 작은 마을은 강원도 산골마을로 바꿨고, 헐리우드는 서울로 탈바꿈시켰다. 특유의 아이리쉬 억양은 이미 친숙해진 강원도 사투리가 대신해 ‘웰컴투 동막골’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박철민ㆍ최덕문과 홍성춘ㆍ서현철 등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선다. 네사람 모두 무대와 스크린과 방송을 종횡무진하는 연기자들로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41-3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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