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하네가 완착을 두어주었기 때문에 흑대마의 수습이 쉽게 되었다. 백2는 평상시 같으면 무조건 선수가 되는 자리지만 지금은 흑이 손을 돌려 3으로 좌변에 선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네는 여기서 백4로 따내는 안전책을 택했다. 평범해 보이지만 깊은 수읽기를 거친 결단(?)이었다. 그냥 가로 두면 흑 2점을 잡을 수가 있는데 4로 두어 흑의 진용을 정비시켜 준 것은 책략부족 같지만 그게 아니다. 참고도1의 백1로 두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흑4 이하 12까지의 필연적인 수순에 의해 귀에서 더 큰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상당한 자제력이다. 저렇게 두어서 이길 수만 있다면 백의 명국이 될 것이다.” 서봉수9단은 백4를 하네 아니면 두기 어려운 수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양재호9단은 찬동하지 않았다. 그 수로는 그냥 10의 자리에 한칸 뛰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흑25까지의 진행을 보고 나서 서봉수는 아까 했던 칭찬을 취소했다. “양사범 말이 맞아.” 역시 백4로는 10의 자리에 한칸 뛰는 것이 나았다는 얘기였다. 수순 가운데 백14는 정수. 참고도2의 백1로 차단하고 싶지만 흑4까지 되고 보면 A와 B가 맞보기가 되어 백의 낭패가 확실해진다. 백26은 일종의 승부수. 좌상귀를 방치한 채 좌하귀 방면의 흑부터 추궁해 보겠다는 비장한 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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