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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미술 한눈에 본다 ■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펴냄)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해질녘’ 19세기 말까지 우리 미술사에서 젊은 여인의 속살을 그리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신윤복이 그린 ‘혜원전신첩’ 속에 들어있는 ‘단오풍정’에서 냇물로 몸을 씻으며 유방과 엉덩이 부분을 드러낸 기생의 모습 정도였지 여성의 맨 살을 그림의 주제로 삼는 것은 꿈에서라도 시도할 수 없는 금기 사항이었다. 예술의 이름으로 젊은 여성의 알몸을 그림의 초점으로 삼는 나체화는 우리 유교적 윤리관으로는 절대 용인될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이전까지 한국 미술사에는 서양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드화가 벽에 걸린 적이 없었다. 결국 한국 최초의 나체화는 우리 땅이 아닌 일본 도쿄에서 첫 선을 보인다. 1916년 김관호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할 때에 학교에 제출했던 ‘해질녘’이 바로 20세기 한국 신미술 양화사의 한 가닥이 된 누드 미술의 첫 작품이다. 한국인으로서 고희동에 이어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한 두번째 양화가 김관호의 나체화는 그의 고향인 능라도의 하늘과 강물에 아름다운 석양빛 정취가 고요하게 드리워진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양화가 40명 졸업생 가운데 유일한 조선인이었던 그의 졸업작품 해질녘은 당당히 수석을 차지한다. 이 작품은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특선에까지 뽑혀 당시 서울 일간지인 ‘매일신보’에 대서특필되지만 유교적 도덕관이 엄연히 살아있던 당신 분위기 속에서 정작 해질녘이란 나체화는 신문에 실리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미술평론가이지 국내 1세대 미술전문 기자인 이구열씨는 미술현장에서 직접 만난 근현대 화가들과의 인터뷰와 미술가들의 가족, 친구들에게 직접 들은 증언을 바탕으로 한국 근대 미술사의 여러 화제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놓았다. 김관호의 누드화 해질녘 외에도 우리 근대 미술사에 최초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 인물과 사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최초로 미국 풍경을 그린 조선 화가 강진희, 조선사람과 풍정을 그린 최초의 외국인 화가 새비지-랜도어, 조선상업화랑 역사의 서막을 연 ‘정두환 서마포’ 등이 그 해답들이다. 이 책에는 또한 당시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잡지나 신문기사, 행방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희귀자료를 포함해 근현대 작가들의 170여 컷의 그림을 담고 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때 날카로운 풍자로 친일파를 조롱한 최초의 시사만화가 이도영의 일화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우리 미술가들의 활동과 한계 등을 설명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부록에는 이 책에서 다뤄진 60여명의 미술가를 정리한 한국 근鍮抉?소사전을 덧붙여 우리 근현대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입력시간 : 2005/05/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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