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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속도를 조정하라/박승씨 중앙대 교수(송현 칼럼)

현 정권이 과감하게 개방의 길을 선택한 것은 큰 흐름으로 보아서는 잘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사전준비가 미흡하고 속도조절이 잘못되면 화를 자초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방정책이 그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지금 당하고 있는 경제난국은 직접 간접으로 개방정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김영삼 정권의 정책실패는 냉온탕식 정책운용 때문이라는 비판이 높다. 일관되고 치밀한 장기 구도와 그 시간표에 의해서 국정을 추진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필요와 직감에 의해서 결정이 내려진다는 뜻인데 개방정책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집권초기의 정책기조는 폐쇄적인 것이었다. 농산물은 절대 개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고 수입개방이나 금융·영화 등 서비스 개방에도 부정적이었다. 이때 개방을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반사회적 인사처럼 매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외압에 의해서 개방으로 선회한 이후에는 마치 개방이란 많을수록 좋고 빠를수록 좋은 것처럼 밀어붙였다. OECD 가입을 서두른 것이 그 예라 할 것이다. 그러나 개방에 대한 충분한 대내적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속도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에 개방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이익은 멀리 있고 충격과 부담이 당장 밀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금융과 서비스 개방 등 개방정책을 6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같은 수준의 개방를 불과 몇해 사이에 소나기식으로 밀어붙인 꼴이 되었다. 개방의 준비가 미흡했다는 것은 농업과 중소기업이 지금 당하고 있는 현실이 입증하고 있다. 농촌의 황폐화와 중소기업의 도산은 저성장­고물가­대외적자로 요약되는 경제난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농촌과 중소기업이 어렵다면 대기업과 중화학 쪽은 그만큼 개방의 득을 보아야 할 것인데 이쪽은 이쪽대로 고비용 저능률에 묶여 비틀대고 있지 않은가. 수입이 개방되면서 이런저런 사치성 소비재가 밀려오고 해외여행에 모두들 들떠나서고 소비가 모방되었다. 국내에서는 가격이 파괴되어 한편에서는 국내산업이 쓰러지고 한편에서는 소비가 조장되고 있다. 이들 모두가 과욕구와 과소비로 치닫게 하여 국제수지 적자에 일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질서 변화를 감안할 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개방에 따른 비용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다만 좀더 신중하게 개방속도와 방법을 조정할 수는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런데 OECD에 서둘러 가입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를 자승자박하는 결과가 되었다. 지나간 얘기지만 OECD가입은 타이밍이 나빴으며 다음 세기의 과제로 몇해 늦추었어야 옳았다. 지금 노동법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따지고 보면 정부가 이 법개정을 그렇게 서두르게 된 것도, 그리고 이 법 때문에 국제기구로부터 몰매를 맞는 것도 모두 OECD가입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부유층의 사교클럽인 로타리나 라이온스 모임에 들어가면 그 수준의 규율과 관행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사교클럽인 OECD에 들어갔으니 복수노조나 교원·공무원의 단결권을 허용하라는 소리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금융개혁 문제도 마찬가지다. 금융개혁은 어차피 누가 하든 해야 할 과제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조급하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사연은 OECD 가입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OECD에 가입하면 금융의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한다. 선진국의 은행·증권·보험회사들이 몰려올 채비를 하고 있으니 형편없이 취약하고 부실한 국내 금융기관들이 견딜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경제의 최대 핵심과제는 국제수지를 지키는 일이다. 국제수지 문제는 이제 벼랑에 서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미 국제적인 신용이 흔들리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으며 여기에 금융기관의 부실까지 겹쳐 외국에서의 기채도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수지를 지키려면 개방속도도 조정해야 옳다. 일본·중국·대만 등이 미국에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는데 우리만 유독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대미경제외교면에서는 왜 일방적으로 수세에 서야만 하는가도 따져야 한다. 금융·건설·서비스 개방, 해외유학과 해외여행, 그리고 상품무역 등 전반에 걸쳐 향후 2∼3년간 과도적으로 개방속도를 늦추어 조정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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