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주례사 대신 나만의 영상물 제작
스튜디오 촬영도 생략…데이트스냅 찍어
호텔업계 다양한 맞춤형 웨딩상품 개발
"결혼식은 일종의 잔치 아닌가요? 마치 반의무적으로 결혼식에 참석해 기계적으로 식을 보고 밥을 먹고 떠나는 시스템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내가 중심이 돼 하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함께 어울려 즐기는 파티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감정 공유의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각예술을 업으로 삼는 안소정(28)씨의 이 같은 고민은 평생 추억에 남을 만한 '세상의 단 하나뿐인 결혼식'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웨딩에도 자신의 색을 입혀 특별한 하루를 만들고 싶었던 안씨는 휘황찬란한 웨딩홀 대신 자신의 업과도 연계된 서울 서촌의 한 갤러리를 웨딩 공간으로 선택했다. 장소 대여가 끝나는 순간 결혼식의 모든 과정은 신부 안씨와 예비신랑의 손에 맡겨졌다.
30㎡(9평) 남짓한 공간 한편에는 안씨의 그림들이 전시되고 작은 무대가 꾸며졌다. 딱딱한 주례 대신 양가 부모님의 축하의 말과 성혼 선언문으로 갈음했고 신랑·신부 죽마고우의 릴레이 편지 낭독이 300명 하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오후3시부터 시작된 결혼식은 족히 7시간은 이어졌다. 갤러리 전시공간에서 옥상정원으로 자리를 옮겨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하는 소규모 가드닝파티도 진행했다. 신랑과 신부는 거리낌 없이 하객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부담 없이 식을 즐겼다. 축의금도 일절 받지 않았다. 간단한 식음료가 포함된 케이터링 서비스(출장 연회) 이용 등 식을 직접 꾸미고 준비하는 데 쓴 제반비용은 갤러리 전시공간 한편에 안씨가 직접 자신의 그림을 넣어 만든 시각예술품을 판매함으로써 일부 충당했다. 식에 참석한 대다수 하객들은 신부의 특별한 작품을 선물 받는 듯한 마음으로 선뜻 지갑을 열었다. 안씨는 "전문 웨딩플래너 도움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준비한 'DIY(Do It Yourself) 웨딩'"이라며 "많은 에너지를 들인 건 사실이지만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멋진 하루를 선물 받았다는 하객들의 말을 전해 듣고는 내심 뿌듯했다"고 말했다.
DIY웨딩 등 기존 틀에서 벗어난 웨딩족들이 늘고 있다. '결혼식 장소=웨딩홀'이라는 공식을 깨고 영화관(시네마)·소극장·펜션·기차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는 추세다. 또 기존 웨딩홀에서 하되 으레 진행했던 식순의 틀을 벗어나 신랑·신부가 주인공인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뮤지컬 형식을 도입해 경건한 식이 아닌 '즐기는 웨딩'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가치와 개성을 드러내려는 '에고 컨슈머' 가 웨딩시장까지 침투한 격이다.
결혼 기념으로 어린 묘목을 심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수목 결혼식', 철인 3종 경기 등 신랑·신부·하객이 한데 어울려 즐기는 '레포츠 결혼식', 저녁시간대 결혼식을 올려 식이 끝난 후 불꽃놀이 등을 즐기며 하루 종일 파티하듯 기쁨을 나누는 '야간 결혼식' 등 콘셉트와 이야기를 더한 웨딩 등이 대표적이다.
천정희 듀오웨드 수석팀장은 "과거에는 양가 어르신들이 주도하는 큰 규모·형식 중심의 웨딩이었다면 최근에는 150∼300명 정도의 소규모 하객들과 함께 신랑·신부가 예식 주최자가 돼 개성 있는 하루를 꾸미려는 수요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웨딩의 진화에는 비교적 일찍이 해외 문화를 접하며 생긴 파티문화 등 젊은 세대들의 독특하고 개방적인 사고와 문화가 한몫했다는 평이다. 또 가수 이효리의 제주도 자택 하우스웨딩 등 유명 연예인의 이색 웨딩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이 같은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천 팀장은 "이색 결혼식을 진행하는 비율이 듀오웨드 전체를 놓고 보면 25% 정도 수준"이라며 "그러나 '좀 더 특별히' '좀 더 다르게'를 주문하는 이들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색 웨딩 진풍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딱딱한 주례사 대신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그래픽에 성우의 더빙을 입혀 신랑·신부가 삶에서 중시하는 가치를 담은 재치 있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등 주례사 부문의 이색 아이디어 경쟁도 뜨겁다. 결혼식 전 진행하는 스튜디오 촬영 역시 기존의 형식적인 것에서 벗어나 데이트스냅 등 일상생활에서 커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파파라치 형태로 찍어 담는 형태가 유행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데이터스냅을 웨딩 패키지에 묶어 판매하는 등 이색 웨딩을 찾는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건함보다 즐기는 웨딩, 독특한 볼거리 등으로 무장한 웨딩을 만들기 위해 웨딩홀 대관비보다 이벤트 비용에 무게중심을 두고 결혼자금을 쏟는 예비부부들의 수요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색 웨딩을 원하는 젊은 예비부부의 증가에 발맞춰 연회 서비스를 강화하는 호텔업계도 다양한 웨딩상품 기획에 혈안이다. 더플라자는 최고층 22층을 독립적인 공간으로 사용해 맞춤식 웨딩이 가능하게 하고 '댄스파티웨딩' 상품을 선보였다. 젊은 층 사이에 파티웨딩이 입소문을 타며 올 상반기에 전년 대비 15% 이상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은 '빈티지'를 콘셉트로 한 80∼140명 규모의 '아트홀웨딩'으로 유명하다. 와인 상자와 공병 등을 활용한 친환경적 연출과 나무로 된 도어와 은은한 램프, 파스텔 톤의 하트 벽체 등으로 빈티지한 느낌을 살려 예술적 감각을 선호하는 젊은 부부 사이에 인기다. 워커힐 '씨어터 웨딩'은 풍부한 조명과 무대연출, 웅장한 사운드로 영화 같은 결혼식 연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11m 높이의 천장과 극장식 계단형으로 이뤄진 하객석, 넓은 메인 무대와 축하공연을 위해 별도로 다른 무대가 마련돼 마치 유럽의 오페라하우스가 연상된다. 메이필드호텔은 경건한 예식을 원하는 고객을 위해 '채플 웨딩'과 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든파티웨딩' 상품을 내놓는 등 틀에 박힌 예식에서 벗어나 개성을 강조한 소규모 웨딩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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