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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저축은행인 A사는 지난 6월부터 두 달여에 걸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고강도 검사를 받았다. 이 저축은행의 지난해 3ㆍ4분기(3월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5%대로 감독기준(5%)에 근접해 부실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사 당시 금감원 검사역들은 이 저축은행의 자산 상당 부분을 부실로 분류해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지시했고 그 결과 이 저축은행의 BIS비율은 5%대에서 0% 아래로 급락했다. BIS비율 5% 이상의 정상 저축은행이 한순간에 부실 저축은행으로 뒤바뀐 셈이다. 이 저축은행은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검사 결과를 반영한 수정공시를 냈다. A저축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난해 대규모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앞두고 진행했던 경영진단 당시보다 이번에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며 "기준을 알 수 없는 검사기준 때문에 재무건전성이 악화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악' 소리 나는 저축은행…BIS비율 '뚝'=지난해와 올해 세 차례 대규모 구조조정과 경기불황으로 고사 위기에 놓인 저축은행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금감원의 '고무줄' 검사기준 탓에 정상 저축은행이 부실 저축은행으로 추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27일 서울경제신문이 확인한 결과 3ㆍ4분기(올해 3월 말 기준) 재무제표에 대한 수정공시를 내놓은 저축은행만 최소 4곳 이상이다.
신라저축은행은 3ㆍ4분기 재무제표 발표 당시 BIS비율을 5.2%라고 공시했으나 최근 슬그머니 이 비율을 5.0%로 수정했다. W저축은행은 5.68%인 BIS비율을 -0.11%로, 세종은 7.13%에서 -1.27%로, 오투저축은행은 4.19%에서 0.59%로 슬그머니 BIS비율을 바꿨다.
BIS비율은 금융회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지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다. BIS비율이 5% 미만이면 경영개선권고, 3% 미만이면 경영개선요구, 1% 미만이면 경영개선명령을 내릴 수 있다. 경영개선명령 대상 저축은행이 순자산 가치가 마이너스(-)일 경우에는 퇴출(영업정지)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4곳 저축은행 외에도 5~6곳가량의 저축은행이 금감원의 검사 이후 수정공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저축은행은 경영권 매각 및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등 구조조정을 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수정공시는 28일 발표되는 연간 결산 재무제표(6월 말 기준)에도 그대로 반영될 예정이다. 상당수 저축은행들의 BIS비율이 예상보다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얘기다. 저축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 기준 무엇이냐" 불만 폭발=이들 저축은행의 BIS비율이 뚝 떨어진 이유는 대부분 금감원의 대출채권에 대한 자산건전성 분류가 한층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대출채권 분류를 엄격하게 하면 저축은행의 대손비용이 늘어나고 당기순이익이 줄어들어 BIS비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신라저축은행은 1~3분기 당기순이익을 당초 -12억원에서 -36억원으로 수정공시했고 W저축은행은 -50억원에서 -266억원으로, 세종은 -15억원에서 -155억원으로, 오투는 -27억원에서 -40억원으로 각각 수정공시했다.
저축은행 업계는 불만이다. 검사 기준의 잣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감원 검사역이 바뀌면서 지난해 7~8월 저축은행 경영진단 당시보다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이 훨씬 강화됐다"며 "일정한 기준이 없이 검사역에 따라 검사결과가 바뀌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정상여신으로 분류되던 대출채권이 올해 부실자산으로 바뀐다면 지난해 금감원 검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라고도 했다.
저축은행 업계의 불만이 폭발하자 금감원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의 자본적정성 기준과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에 대한 세부기준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는 최근 이를 위한 외부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BIS비율을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자본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고무줄 잣대'라는 비난을 받아온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등이 연구용역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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