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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항공기 조립(해외과학가 산책)
입력1997-02-14 00:00:00
수정
1997.02.14 00:00:00
허두영 기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부모들은 조립식 자동차나 조립식 비행기와 같은 장난감을 사주면,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설명서와 그림을 보면서 조립식 장난감을 꼼꼼하게 만들어내는 아들에 대해 가끔 대견함을 느낀다.그러나 이러한 대견함 뒤에 아들에게는 들키기 싫은 당혹스러움이 숨어 있다. 그들은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갖다 끼워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고 설명서와 그림을 보아도 그 복잡한 조립식 장난감을 완성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당혹스러움은 과학기술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수십만∼수백만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하는 항공기 제작회사의 기술자들은 그들의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많은 항공기 부품을 조립하는데 대해 곤혹스러움을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 남캘리포니아 대학의 울리히 노이만 박사팀은 최근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기법을 응용하여 현장에서 항공기 조립방법을 상세하게 가르쳐주는 가상 조립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비디오 카메라로 어떤 부품을 비추면 카메라에 연결된 컴퓨터가 그 부품을 자동으로 인식하여 설계도면과 조립방법을 화면에 불러낸다. 또 필요하면 카메라가 촬영한 화면 위에 설계도면이 겹쳐 나타나게 하여 어디에 구멍을 뚫고 리벳을 박아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맥도널더글라스사는 최근 노이만 박사팀의 가상 조립 시스템을 도입, 중형항공기인 DC10의 주요 부품에 구멍을 뚫고 조립하는 시험에 착수했다.
보잉사는 한술 더 떠 작업자가 가상현실을 볼 때처럼 헤드기어를 쓰고 컴퓨터를 허리에 차고 다니면서 복잡한 부품을 조립할 수 있는 가상 조립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헤드기어에 달린 카메라로 어떤 부품을 보면 컴퓨터에서 곧바로 그에 대한 도면과 조립방법을 헤드기어 속의 화면에 제시한다. 헤드기어는 의사의 검안경처럼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다른 눈으로 직접 부품을 보면서 현실과 화면속의 부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보잉은 이 시스템을 항공기의 전기 배선에 시험 적용할 계획이다. 항공기 속에는 약 1천여개의 회로뭉치가 거미줄 처럼 얼기설기 얽혀있고 회로뭉치마다 인쇄회로기판이 달려 있는데다 항공기의 종류에 따라 배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작업은 항공기 조립 작업에서 가장 까다롭다.
이같은 기법을 「보강현실(AR:Augmented Reality)」이라고 한다. 보강현실은 카메라가 촬영한 화면에 문자나 그림을 띄울 수 있어 어떤 대상을 지시하고 설명하는데 편리하다. 폭격기의 조종사가 목표를 조준할 때 화면에 가로세로의 축이 나타나 정확한 폭격을 도와주는 전자조준시스템도 이를 이용한 것이다.
보강현실 시스템의 핵심은 카메라로 어떤 대상을 보았을 때 컴퓨터 속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그에 대응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가상조립 시스템은 미리 부품마다 어떤 표시를 하거나 형상인식기법으로 부품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또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헤드기어에 자기 센서나 초음파 장치를 달아 부품의 방향, 위치, 거리등을 측정하거나 자이로스코프나 액셀러미터로 작업자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고려하여 특정 부품을 인식하는 기술도 병용된다. 이같은 보강현실 시스템은 제조업에서 조립, 제조, 유지보수 등의 작업에 사용될 수 있고 앞으로 건설, 의료, 군사 등의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상조립 시스템이 있어도 어떤 부모들은 이를 이용하여 아들의 장난감 조립을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를 비롯하여 새로 등장하는 문명의 이기는 신세대의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은 과학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아들은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워싱턴=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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