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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카오스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난 87년 제임스 글리크(James Gleick)가 쓴 ‘카오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카오스’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카오스 이론의 역사는 이보다 24년이나 앞선다.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63년 미국 대기과학저널(Journal of the Atmospheric Sciences)에 내 놓은 논문 ‘결정론적이고 비주기적인 흐름(Deterministic nonperiodic flow)’이 카오스 이론의 발원지다. 기상학자인 로렌츠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 날갯짓이 다음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일명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로 불리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공개했다. 카오스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사실은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발표 이후 10년 동안 1년에 한 차례 정도밖에 인용되지 않던 이 이론은 점차 생명력을 키워가면서 70~80년대는 인용횟수가 연간 100회를 넘어섰고 지금은 상대성이론 만큼이 상식적인 수준의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80년대 유행했던 카오스이론의 뒤를 이어 90년대를 풍미한 것은 복잡성 이론이었다. 단순한 규칙들에 따라 상호 작용하는 많은 개체들이 예상치 못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이 복잡성 이론은 최근 들어 동시성(Sync) 이론에 자리를 내놓을 채비를 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응용수학과 교수로 카오스와 복잡성 이론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쓴 ‘동시성의 과학, 싱크’는 무질서 속에 질서가 나타나는 과정을 동시성, 혹은 동조 현상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틀로 설명하고 있다. ‘싱크’란 ‘싱크로나이즈 수영’ ‘립 싱크’란 말에서 보듯 동시에 무엇인가를 맞춰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오스 이론의 설명을 위해 ‘나비’가 필요했다면 동시성 이론에는 ‘반딧불이’가 등장한다. 말레이시아의 망그로브 숲에는 매일밤 수천마리의 반딧불이가 서로 동조해서 반짝인다. 소리없이 동시에 터트리는 그들의 장엄한 빛은 수십년 동안 과학자들에게 논쟁거리이자 우주의 수수께끼로 여겨졌다. 그저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됐던 반딧불이의 발광은 리듬에 맞춰 빛을 발하는 동조 현상임이 밝혀졌다. 스트로가츠는 반딧불이가 서로의 빛을 감지해 다른 것들과 동조할 수 있도록 스스로 조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소리 없는 신호를 통해 지휘자 없이 정확하게 박자를 맞추는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동조현상은 반딧불이 같은 곤충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은 생리 주기가 닮아간다. 인간 심장의 수많은 박동조절세포들은 한치 오차없이 매번 동시에 방전한다. 97년 일본에서 TV 만화 ‘포켓몬’을 보던 어린이 수백명이 졸도한 사건도 바로 동조현상 때문이란 그의 설명은 놀랍기까지 하다. 만화에서 일시에 폭발하는 변화무쌍한 빛이 집중적인 자극을 일으켰고 이 빛에 어린이 뇌의 신경세포가 일시에 발화해 졸도에 이른 것이라는 얘기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미국 스리마일 섬에서 일어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모두 자정에서 오전 4시 사이에 일어난 이유는 자야만 하는 시간에 깨어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교란된 동조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동조 현상에 대한 그의 신념은 무생물에까지 이어진다. 초전도체 안의 수조개의 전자들이 일렬로 행진해 저항이 전혀 없이 전기가 흐를 수 있게 하는 것과 달이 지구 주위를 한바퀴 공전하는 동안 자전을 꼭 한번 것도 그는 동조현상으로 본다. 동조 현상에 대한 그의 경외감은 가히 종교적이다. 그는 “동조는 아름답고 신기하고 심원한 감동을 준다”면서 “동조의 장관은 우리 영혼의 깊은 곳 어딘가에 심금을 울린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동조는 무슨 기능을 할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아직 명백하지는 않다. 반딧불이가 동조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집단적 초대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러 답변 가운데 동조의 결과는 생물의 번식 기회와 생존의 기회를 더 넓힌다는 스트로가츠의 설명은 어쩐지 “조직 문화에서 오래 버티려면 튀지 말고 대세에 순응하라”는 속된 진리와 일맥상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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