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수익을 얻고 있는 업종이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에서 국내 500대 기업의 절반이 넘는 55.6%가 현재 사업의 미래 전망에 대해 이 같은 부정적 전망을 내놓아 충격을 줬다. 실제 ‘한국의 연구개발(R&D) 스코어보드 2006’ 자료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들이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해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R&D 투자는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ㆍLG전자 등 소수 글로벌 기업에 의지해 한국경제가 버티고 있는 현실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앞으로 이 같은 재계의 양극화 문제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아가 R&D 투자가 골고루 확산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의 변동성에 흔들리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고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해소 기미 없는 R&D ‘양극화’=이번 자료의 특징은 이른바 ‘삼성전자 착시 효과’였다. 삼성전자라는 일개 기업 때문에 전체 R&D투자가 증가한 것으로 보였다는 뜻이다. 지난 2005년에 삼성전자가 투자한 R&D 총규모는 5조4,098억원으로 국내 상장ㆍ등록사 750개 기업 전체 투자액의 37.4%에 달했다. 2위인 LG전자(1조3,157억원)와의 격차만도 4조원 이상이었다. 이어 1조원대에 현대차가 이름을 올리고 KTㆍ기아차가 5,000억~6,000억원 수준의 R&D 투자를 집행했다. 이에 따라 1~10대 기업의 R&D 총 투자액이 전체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2.6%에 달해 재계의 R&D 투자가 ‘10개 대기업’과 ‘기타 기업’으로 뚜렷이 양분돼 있었다. 또 전체 투자액을 4개 기업군으로 살펴보면 ‘상장 대기업’의 R&D 투자액이 13조7,700억원(95.1%)에 달했고 이어 ▦‘코스닥 벤처기업’ 3,200억원(2.2%) ▦‘코스닥 일반기업’ 3,000억원(2.1%) ▦‘상장 중소기업’ 900억원(0.6%) 등으로 각 집단간 편차가 컸다. 이와 함께 매출액 대비 R&D 투자분을 보여주는 ‘R&D 집약도’를 보면 2005년 재계의 R&D 투자 실적은 전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닥 벤처기업이 전년보다 0.33%포인트 증가했을 뿐 상장 대기업은 0.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장 중소기업은 오히려 0.02%포인트 감소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현금은 계속 쌓으면서 이에 상응한 R&D 투자는 늘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R&D 많으면 수익도 좋았다=R&D 투자 증가는 성장률ㆍ수익률 향상이라는 공식으로 이어졌다. R&D 집약도가 2% 이상인 ‘고집약도’ 기업집단은 그렇지 않은 기업집단에 비해 누적 주가수익률이 월등히 앞섰다. 99년부터 2005년까지 ‘코스피 200’ 기업의 누적주가수익률은 331.3%인 반면 고집약도 기업집단은 783.5%로 전체 평균의 2배가 넘는 452.2%포인트가 추가 상승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들은 R&D 투자가 많은 기업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장 대기업 318개사를 산업별로 분류, 외국인 지분비율 ‘평균 이상’ 기업과 ‘평균 이하’인 기업으로 나눈 결과 건설업과 섬유ㆍ의류, 화학을 제외한 전 산업에서 외국인 지분비율 평균 이상인 기업의 R&D 집약도가 평균 이하인 기업보다 월등히 높았다. 통신업의 경우 평균 이상 기업의 집약도가 무려 2.6%포인트 앞섰다. ◇R&D 투자 유인 세제혜택 확대 시급=R&D 양극화는 무엇보다 리스크 경영을 회피하려는 재계의 경영풍토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조성표 경북대 교수는 “20대 기업 이하는 대부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가 크게 저조했다”며 “이는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보다는 ‘안방장사(국내사업)’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중소기업 위주로 제공되는 R&D 세제혜택 역시 기업의 적극적 R&D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원락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조사팀 부장은 “최근 논란이 된 수도권 규제에서 볼 수 있듯 막상 국내에 R&D 투자를 하려 해도 결국 정부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대기업은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흘러가고 있는 중소기업 위주의 세제혜택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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