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기업도시는 수도권과 근접한 충주와 원주 외에는 시행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원)
추진된 지 10년이 지난 기업도시 개발사업의 현주소다.
정부는 지난 2004년 12월 국토균형발전과 기업 이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을 제정했다. 이듬해인 2005년 8월에는 충주, 원주, 무안, 태안, 무주, 영암·해남 등 6개 지역을 기업도시 개발 시범사업지로 선정했다. 충주와 원주는 지식기반형, 무안은 산업교역형, 태안·무주·영암·해남은 관광레저형으로 각각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기업도시로 뽑히기 위해 각 지역들은 엄청난 경쟁을 해야 했다. 기업도시로 지정되면 곧 지역경제가 살 수 있다는 꿈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만 컸다. 기업도시 개발사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계속된 국내 부동산경기 침체로 매우 지지부진하다. 후속사업지의 발굴은 고사하고 무안과 무주 등 시범사업마저 줄줄이 취소되는 등 악화 일로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대적인 제도개선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사업 추진에 대한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 투자자 파산으로 줄줄이 청산=기업도시 개발사업은 민간기업의 국내 투자를 통한 지역발전이 최우선 목표였다. 하지만 정작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곳은 다른 사업지에 비해 비교적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뛰어난 충주와 원주뿐이다.
시범사업지 가운데 무주와 무안은 지정 해제됐고 매립지 위에 조성되는 영암·해남은 최근에야 매립면허권을 양도·양수 받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업계에 따르면 무주는 주요 출자사인 대한전선이 2008년 5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고 무주군은 대체투자자를 모집하지 못해 2011년 1월 시범사업을 취소했다. 산업교역형으로 추진된 무안은 국내단지와 한중산업단지로 지구를 분할해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국내단지 사업 시행자인 ㈜무안기업도시개발이 2010년 청산 과정을 밟았고 한중산업단지의 시행사 역시 대주주인 중국 자본의 투자 철회로 지난해 초 사업을 접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영암·해남기업도시 역시 공유수면 매립권의 양수·양도가 최근 해결됐지만 개발사업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성 태부족…전격적인 구조조정 나서야=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정부가 기업도시에 대해 대대적인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쉽게 말해 몇 가지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미 산업단지와 혁신도시·경제자유구역 등 기업도시의 콘셉트와 비슷한 유형의 개발사업이 전국 곳곳에 추진되고 있는 만큼 차별화가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충주와 원주기업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구 모두 골프텔(골프장+호텔)을 분양하는 것을 주요 수익사업으로 하고 있다. 설령 완공된다 하더라도 공급 과잉이라는 골프장의 태생적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비관론이 많다. 특히 태안이나 영암·해남의 경우 이미 수도권 외곽에 대거 들어선 골프장들과 지리적 경쟁에서 한참 밀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기업도시 개발사업의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충주와 원주의 경우는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각각 첨단산단 연계 클러스터와 의료관광 클러스터 등을 접목해 그나마 사업이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관광레저형의 경우는 사업 시행자가 조성원가 이하로 용지를 분양해야 하는데 시행사 입장에서 아직 골프장조차 들어서지 않은 상태에서 골프텔을 선분양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기업도시의 규모도 크다. 자연스럽게 개발업자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시행령에 따르면 기업도시 개발면적 규모는 최소 300만㎡다. 물론 이는 지식기반형 도시에만 해당된다.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는 지식기반형의 두 배 규모인 660만㎡ 이상이어야 하고 산업교역형도 500만㎡를 넘어야 한다. 기업도시의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도 규모가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정부는 도시의 규모를 줄이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너무 많은 지역에 산업단지와 혁신도시 등 특수한 지구를 만들어 특수의 의미 자체가 이미 퇴색된데다 집중돼야 할 힘이 분산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사업성이 없는 곳은 가차 없이 지구에서 해제하고 살아날 수 있을 만한 곳에는 과감한 규제 완화와 재정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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