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이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워크숍에는 행장이 직접 참석해 경영 방향에 대한 발표와 질의응답을 한다. 지난 14년간 이 워크숍에 참석해온 하영구 전 행장의 발표는 한마디로 '숫자'였다. 하 전 행장이 준비한 자료집은 언제나 경영과 관련된 숫자로 빼곡한 날카로운 보고서였다.
취임한 지 갓 열흘이 된 박진회(사진) 신임 행장도 예외 없이 지난 6일부터 열린 노조 워크숍에 참석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발표에는 보고서 대신 책 한 권이 등장했다.
박 행장이 준비한 책은 다음커뮤니케이션 전략이사를 지내고 SK플래닛 상무로 자리를 옮긴 김지현 상무가 쓴 '포스트 스마트폰, 경계의 붕괴'. 이 책은 기술 혁신에 기업이 어떤 통찰력을 갖고 생존 전략을 짜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 다음에 올 사물인터넷(IoT) 세상에 적응하려면 새로운 기술을 발 빠르게 활용해 비즈니스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업체들이 은행업을 넘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은행도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책을 통해 전한 것이다.
박 행장은 경영 방향 프레젠테이션 서두에서도 '우버 택시' 이야기를 꺼내며 은행의 변화를 역설했다. 우버는 승객과 운전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연결해 주고 택시비의 20% 이내에서 수수료를 가져가는 서비스다. 신용카드를 등록해놓고 우버를 통해 결제하기 때문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택시를 탈 수 있다. 박 신임 행장은 "여러분이라면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발표 후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본사 건물 매각 등 현안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박 행장은 하 전 행장과 마찬가지로 금융 환경의 변화와 비용절감 문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본사 매각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좌절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매각은 진행 중이며 본사와의 의견 조율로 다소 미뤄졌을 뿐"이라고 답했다.
씨티은행은 싱가포르계 자산관리회사인 ARA 에셋매니지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매각을 진행 중이다. 본점이 매각되면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를 임차해 들어갈 계획이다.
박 행장은 오는 21일 임원 워크숍에 이어 지점을 직접 찾아 타운홀미팅 등을 이어 간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