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최고경영자(CEO)에게 2013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저금리로 수익성은 떨어지는데 경제민주화와 규제의 칼날은 매섭게 다가왔다. 유능한 CEO는 고비에서 빛을 발하는 법. 위기를 기회로 삼은 CEO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경제신문은 이들 중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과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현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올해의 CEO로 꼽았다. 비록 지금은 자리를 물러났지만 금융계에서는 이들의 족적을 잊지 않고 있다.
조준희(사진) 전 IBK기업은행장이 국내 금융권을 선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줄줄이 나왔던 것이 △원샷 인사 △고졸 채용 △대출 최고금리 한 자릿수 인하 △송해 광고 등이었다. 기업은행이 첫 테이프를 끊으면 전 금융권이 달려들었고 그대로 트렌드가 됐다.
오죽했으면 당시 세간에는 "조 전 행장 다음에 오는 분은 불행한(?) 행장이 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전임 행장이 워낙 많은 일을 해놔서 후임 행장의 업무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였다.
대출금리 인하나 고졸 채용 등과 같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일들에 가려져 있지만 조 전 행장이 남긴 유산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기업은행에 내부 승진 전통을 확립시켜놨다는 점이다.
권선주 현 기업은행장만 해도 권 행장의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은 논외로 치고 조 전 행장이 절반 정도는 만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의 끊임없는 낙하산 투하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낸 게 바로 조 전 행장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연임을 내심 바랐던 조 전 행장은 은행을 떠나게 됐지만 후배에게 행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결과적으로 자행 출신 은행장이라는 전통이 이어졌다. 특히 우리나라 리딩뱅크이자 시중은행인 국민은행만 해도 자행 출신 행장을 배출한 게 딱 한 번(민병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낙하산을 저지했다는 것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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