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때아닌 공정위의 담합 조사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여수신 금리 체계 전반을 들여다보는 대규모 조사인데다 정부 차원에서 금융 보신주의 척결 의지를 과시하는 국면에 나왔다는 점에서 긴장감의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당장 최근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은행들의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흐름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어 자칫 지난 2012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의 '제2 라운드' 성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금융보신주의가 화두가 되고 있는 시기에 조사를 나온 것도 그렇고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은행으로서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왜 지금이냐" 해석 분분=이번 조사는 27일까지 이틀간 신한·하나·국민·우리 등 4대 은행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공정위는 각 은행당 5~6명을 투입해 대출금리뿐만 아니라 예금금리와 관련한 공문·e메일·메신저 등을 샅샅이 훑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관 수가 각 은행당 3명, CD금리 하나만 팠던 2012년 조사 때와 비교하면 이번 조사의 규모가 이례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다.
은행들은 금융보신주의 이슈가 부각된 상황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은행들이 기술금융 확대 조치 등과 관련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정부 차원에서 은행 팔 비틀기에 나섰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담겼다. 사실상 대통령의 의중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예·적금금리 인하 폭에 비해 대출금리 인하 폭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점도 공정위가 나서는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한쪽(금융당국)에서는 은행에 당근을 제시하고 한쪽(공정위)에서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면서 부처 간 엇박자를 꼬집고 있다.
◇은행 "담합 없다"…대출금리 등 변화 주목=한 시중은행장은 "자본시장이 완전히 오픈돼 있는데 무슨 담합이냐"며 "0.1%만 금리가 움직여도 자금이 왔다갔다하는 저금리에서 이득도 없는 담합을 할 이유가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시장금리라는 게 기준금리 조정 이후 비슷한 시기에 움직이기 때문이지 모종의 꿍꿍이가 있어 그런 게 아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다른 은행 임원도 "이번 조사도 은행에 눈치를 주기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조사가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나더라도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 등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과거 CD금리도 조사 직후 연 3.25%에서 석 달 뒤 연 2.87%로 0.38%포인트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 금리가 0.08% 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CD금리가 얼마나 가파르게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조사에 부담을 느낀 은행들이 금리 조정에 나설 수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술금융 확대에도 이전보다 의욕적으로 나설 수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서민금융·기술금융에 나서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있겠느냐"고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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