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에 흑의 세력이 상당히 생기긴 했지만 아직 실리로는 백이 앞서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미세해서 전반적인 형세는 오리무중이다. “미세했던 모양인데 저는 무조건 이겼다고 믿었기 때문에 옹졸한 착상을 자꾸 했어요.” 박영훈이 복기때 한 말이다. 옹졸한 착상의 첫번째가 백88로 웅크린 수. 그 수로는 무조건 89의 자리에 젖히고 보았어야 했다. 흑이 89를 두자 우상귀의 백진에 결정적인 약점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좌상귀 방면도 허해졌다. 박영훈이 얼른 90으로 모양을 갖추었지만 아직 완생은 아니다. 흑이 가로 치중해오면 패가 나는 자리. 여기서부터 백은 시한폭탄을 안고 싸우게 되었다. 백94 역시 졸렬한 착상이었다. 지금은 입계의완(入界宜緩)이라는 위기십결의 교훈을 생각해야 했다. 적진을 삭감할 때는 깊이 뛰어드는 것을 삼가라는 그 교훈 참고도의 백1로 4선을 두어 7까지 중원 방면의 외세를 쌓았어야 했다. 흑95 이하 99로 꾹꾹 누르자 백은 사방이 엷어서 신경 써야 할 곳이 많아졌다. 어느덧 흑이 역전에 성공한 모습니다. (83…80의 위) /노승일ㆍ바둑평론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