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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시행착오(되짚어본 한보미스테리)

◎선대출 후사업평가 “정책 아리송”/92년 상공부서 거액여신 추천 「특혜성」 물의/철강투자액의 90%이상 금융권 돈으로 땜질/미검증 코레스공법 도입과정등 의혹 줄줄이지난 17일 국회 한보조사특위 청문회장. 증인으로 나온 이형구 전 산업은행총재에게 특위의원들의 서릿발같은 추궁이 쏟아졌다. 『92년 12월31일 이루어진 한보에 대한 외화대출은 사업성검토와 기술검토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차입신청후 불과 4일만에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타당성도 확인하기 전에 먼저 대출해 준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정총회장이 한보의 대출실무자에게 「산업은행에 대출신청한 것이 잘 될테니 염려말고 돈받을 준비나 하라」고 했다는데 증인과 정씨간에 사전약속이 있었던게 아니냐』 『…』 이전총재는 곤란한듯 답변을 거부했다. ○은행차입 개시 91년 2월 수서사건 파문으로 구속됐던 정총회장은 그해 7월 집행유예로 풀려 나오면서 내밀하게 그룹재기에 나선다. 표면상 경영전면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당진제철소 완공을 그룹 재도약의 계기로 설정하고 제철소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동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총회장의 자금동원 주타켓은 당연히 은행이었다. 수서사건 이후 한보그룹에 대한 금융권 대출이 재개되기 시작한 것은 92년말 산업은행의 외화대출이 그 시발점이다. 외화대출이란 은행들이 해외에서 직접 조달하거나 한국은행에서 빌린 외화를 시설재 수입결제용으로 빌려주는 제도로 외화대출금은 장기저리(대출금리 7%)라는 잇점 때문에 특혜성자금으로도 불린다. 외화대출은 특히 주무부처인 상공부의 추천을 받아야만 하는데 당시 상공부는 34개 업체에 4억2백만달러를 배정하면서 유독 한보철강에만 3천6백만달러라는 거금을 추천해 물의를 빚는다.(3천6백만달러는 당시 1개사당 평균 배정액 1천20만달러의 세배가 넘는 금액으로 상공부의 추천여부가 외화대출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두고두고 특혜시비의 고리로 남는다) 상공부의 외화대출 추천을 근거로 산업은행은 차입신청 접수후 불과 4일만인 92년 12월31일 한보철강에 1천9백84만달러(한화 1백50억원상당)를 대출해 준다. 자금지원은 「번개불에 콩 구워 먹듯」 신속하게 집행됐고 대출이 이루어지기 전에 검토했어야 할 「타당성 평가보고서」는 수십일이 지난 후인 다음해 1월에야 제출됐다. 산업은행은 이처럼 「한보 금융여신 재개」의 총대를 걺어지고 나섰고 이후 제일 조흥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합세하면서 한보그룹의 금융여신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93년까지만 해도 3천8백89억원선에 불과했던 한보철강의 은행권 여신은 94년들어 1조4천9백24억원으로 급증했으며 ▲95년 2조8백15억원 ▲96년 3조2백8억원 ▲올들어 1월말 현재 3조2천6백48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산업은행은 그러나 이같은 한보그룹 여신주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후일 은행감독원으로부터 뒤늦게 문책을 받게 된다. 은감원은 한보부도로 인한 파장이 확산되던 지난 2월20일 채권은행들에 대한 특검결과를 발표하면서 산업은행을 여신취급 불철저기관으로 문책했다. 은감원은 『당시 한보철강이 제시한 1, 2단계 사업에 대한 사업성검토에서 한국기업평가로부터 「실현가능성에 대한 현실성과 구체성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받았으나 산업은행이 이를 무시하고 대출을 강행했다』고 문책사유를 밝혔다. 한보그룹에 대한 금융권 대출은 이렇게 의혹과 특혜시비 속에서 그 막을 올린다. 수서사건 이후 은퇴했던 정태수 회장이 현정부 출범후인 93년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과 때맞춰 산업은행을 필두로 제일 조흥 외환은행 등 일반 시중은행들까지도 합세해 일제히 한보지원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이다. ○「떡값」과 금융권대출 93년을 넘어서면서 한보그룹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한한 자금동원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무려 5조원대의 자금이 투입되는 아산만 철강단지사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신규사업에 잇따라 진출하는 등 근거를 알 수 없는 자금들이 한보의 주머니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한보그룹은 93년 7월 연매출 4백억원대의 상아제약을 인수한데 이어 ▲94년 7월삼화상호신용금고 ▲96년 2월 유원건설 ▲96년 11월 대동조선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그룹규모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나갔다. 문제는 그 막대한 자금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점이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들이 적기마다 정총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지난 1월말 현재 한보철강이 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금은 3조2천6백48억원. 여기에 제2금융권 대출과 회사채 등 사채발행분까지 포함시킬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온 자금은 총 5조5백59억원선으로 늘어난다. 검찰은 한보그룹이 이중 ▲3조5천9백12억원을 시설자금 ▲1조2천5백11억원을 운영자금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2천1백36억원은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최근 발표했다. 전체 5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중 90% 이상을 금융기관 돈으로 메꾼데 이어 그나마 일부를 사적인 용도로 유용했다는 얘기다. 한보그룹이 이처럼 금융기관 자금을 마치 제돈처럼 운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총회장 특유의 로비력이 큰 몫을 담당한다. 남들보다 「0」자 하나가 더 붙은 자금을 살포한다는 정총회장의 배포 큰 「떡값」이 정계와 관계를 무시로 넘나들면서 위력을 발휘했다. 홍인길 전 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이 95년 1월 이후 다섯차례에 걸쳐 10억원의 자금을 수수했으며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이철수 신광식 행장,우찬목 조흥은행장,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 황병태 정재철 신한국당의원, 권로갑 국민회의의원 등이 정총회장으로부터 각각 수억원씩의 로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들통나 구속됐다. 홍전수석은 93년 8월 민주계 로비설과 관련, 사정당국이 한보그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자 이를 무마해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정총회장의 부탁으로 산업 제일 외환은행 등에 각각 거액대출을 청탁한 사실이 포착됐다. 홍전수석은 특히 한보부도의 파문이 확산되던 지난 2월5일 『나는 실세가 아니라 불면 날아가는 깃털에 불과하다』는 깃털론을 제기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밖에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은 유원건설 인수과정에서 1천89억원을 지급보증 형식으로 지원해주고 2억원의 대가를 받았으며 95년 6월에는 당진제철소 1단계 준공식에 주거래은행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반면 손홍균 서울은행장은 다른 은행장들과 달리 한보그룹 여신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끈다. 94년 2월 취임한 손행장은 한보그룹의 재무상태를 파악한 후 『한보가 앞으로 우리 은행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주거래은행을 다른 은행에 넘기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다. 이런 연유로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은 그 해말 서울은행에서 제일은행으로 바뀐다. 손행장은 또 주거래은행 변경과 함께 소리없이 한보여신 회수에 나서 재임기간 2년여 동안 3백70억원의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결국 정총회장이 자칭 「한국의 보물」(한보)을 「크게 지킬」(태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같은 무차별적인 자금살포가 주요 무기로 작용했던 셈이다. 그러나 사과상자에 차곡차곡 쌓여 뭉텅이로 전달된 수십억원씩의 로비자금은 불과 수년후 「한국의 보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관계」를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극약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정태수씨는 독약을 뿌리듯 살육전을 펼쳤고 정치권에는 대변란이 발생했다』 한보청문회에 질문자로 나선 김학원 의원(신한국당)은 정총회장의 로비백태와 그로 인한 폐해를 이같이 표현했다. ○설비도입 과정의 의문 한보철강은 막대한 금융자금 대출외에 각종 시설재 도입과 사회간접시설 설치과정에서도 상당한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제기되는 것이 코렉스(COREX) 공법으로 알려진 용융환원제철기술의 도입이다. 통산부는 95년 7월 『코렉스공법이 세계적으로 검증을 받지 못했고 상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포철의 코렉스공장 건설에 반대의견을 표명한 반면 한보에 대해서는 기술도입을 허가했다. 동일 사안에 대해 정부가 이중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같은 결정은 89년말 아산만 공유수면 매립승인 과정에서 정부가 삼성그룹의 매립요청은 불허하고 한보그룹에 대해서는 전격적으로 허가를 내 준 전례와 더불어 두고두고 정부차원의 시비거리로 회자된다. 한보철강에 대한 특혜설은 국회 한보특위 조사활동이 본격화되면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임채정 의원(국민회의)이 최근 임시국회에서 밝힌 「김현철 2천억원 수수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임의원은 『한보가 독일 SMS사로부터 열연냉연설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현철씨측이 중개료로 2천억원을 수수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열연냉연설비의 자체도입가가 3천억원선 이하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코렉스도입을 둘러싼 의혹으로 재차 증폭된다. 현철씨측이 한보측에 열연냉연설비가 아닌 고가의 코렉스도입을 중개해 주었고 이 과정에서 상당액수의 돈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만큼 결과를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보그룹이 지난해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러시아가스전개발사업도 특혜시비의 핵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당초 한보가 국내업체들의 컨소시엄을 외면하고 러시아가스전개발에 단독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그러나 정부는 무슨 곡절에선지 한보측이 단독참여를 계속 강행하고 나서자 태도를 바꿔 지분투자를 인정한다는 선으로 한발 물러섰다. 한보는 결국 지난해 10월 일부 의결권을 확보함으로써 이르쿠츠크 가스전개발사업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한보의 기업이면사를 뒤적이다 보면 이처럼 묘한 사연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한보라는 이름하에서는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이룡남 한보철강사장은 청문회증언에서 한보철강을 『실패로 끝난 미완성교향곡』에 비유했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정상적으로 완공됐다하더라도 언젠가는 터지고야마는 운명의 레퀴엠(진혼곡)에 불과했다.<이종석> ◎한보일지(94∼95년) 94. 2 손홍균 서울은행장 취임(재임기간 2년간 한보여신 370억원 회수) 94. 7 삼화상호신용금고 인수 94. 8 코렉스공법으로 알려진 용융환원제철기술 도입, 연산 75만톤 규모 코렉스 2기 건설 94. 9 김우석(당시 건설부장관), 당진제철소와 34번 국도를 연결하는 해안도로 예산을 조속히 배정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1억원 수수 94.12 제일은행 이철수 행장 한보철강에 대한 신용조사 지시 95. 2 한보철강 외자도입법상 조세감면대상인 코렉스기술도입 신고 95. 2 한보그룹 여신관리 30대기업 선정(24위), 30대 재벌 진입 95. 2 우찬목 조흥은행장 취임(2980억 대출, 4억원 수수) 95. 6 한보그룹 유원건설 인수(1주당 1원 선인수 후정산) 95.10 노태우 비자금 3백억원 한보그룹이 실명전환해 준 사실 드러남. 95. 6 당진 열연공장 1단계 준공식(박재윤 장관 이철수 행장 참석) 95.12 홍인길 의원 이철수 행장에게 대출 청탁 전화 95.12 주거래은행 제일은행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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