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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만 하는 정부

'CD 식물화' 우려 2년전 경고 불구 결론 못내고 책임 떠넘기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업무적으로 가장 자랑해온 것은 '속도감'이다. 다른 부처에 비해 탁월했다. 금감원의 조사ㆍ검사권을 바탕으로 금융위는 최고의 인력풀을 통해 한발 빠른 정책을 구사해왔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그런 모습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정책의 속도감은 없어지고 기관 간 영역다툼만 하기에 바쁘다. 최근 가계부채에 대한 해결방식만 해도 금융위는 "금감원이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고 이 속에서 금감원장은 발언의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이번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사태도 그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CD의 '식물화' 우려가 제기된 것은 2년 전인 지난 2010년부터다. 2009년 금융당국이 예대율 산정에서 CD발행액을 제외시킨 직후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예대율(예금-대출 비율) 규제를 100%로 강화하면서 CD를 예금에서 제외하자 CD발행을 크게 줄였고 자연스레 CD금리는 금융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고정된 모습을 보였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신규대출시 CD금리 대신 코픽스금리를 기준으로 삼도록 행정지도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었다. 대출금리는 물론 파생상품 거래의 기준으로 사용되는 지표금리인 CD금리의 대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채 1년여간 허송세월만 보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CD금리를 대체할 지표금리 육성을 위해 단기국채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 한국은행은 3개월물 통화안정증권을 단기지표금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두 기관이 지표금리 주도권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한 것이다. 두 기관의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으른 국회 탓에 일단락됐다. 재정부가 단기국채 발행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을 시도했다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자 결국 통안증권을 육성하기로 한은과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금융위ㆍ금감원 등 금융당국과 한은, 은행권 협의 과정에서 또다시 '잡음'이 일어난 것이다. 은행권은 "정부가 금리를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안증권 육성에 반대했고 대안으로 제시된 코픽스나 코리보도 시장금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아 금융당국은 결국 지표금리 육성 논의를 중단했다. 재정부ㆍ한은 간 밥그릇 싸움이 금융당국ㆍ한은ㆍ은행권 간 밥그릇 싸움으로 확대된 셈이다.

이견이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초 결국 논의를 유보하는 쪽으로 결론 냈다. 그 이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조사에 착수하기까지 4~5개월간 지표금리 육성 방안은 금융당국의 책상서랍 속에 처박힌 채 먼지만 쌓였다. 금융당국의 조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다. CD금리를 없앨 경우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CD금리를 없앨 경우 CD금리를 기준으로 거래되는 파생상품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공정위 담합 조사로 책임론이 불거지자 정부 내에서는 책임을 서로 떠넘기려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지표금리 문제는 금융위와 한은의 몫"이라며 화살을 돌렸고 한은은 "기준금리도 아닌 시장금리에 한은이 개입할 권리는 없다"며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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