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등 정통 고시파들을 중심으로 끈끈하게 형성됐던 세무 공무원들의 ‘텃새’ 속에서 비고시파(派)들이 조금씩 나래를 펴고 있다. 아직은 개인적 역량을 토대로 혈혈단신과 다름 없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실정이지만 9급 출신으로 당당하게 1급까지 올라가거나 실세 자리를 점유하면서 고시파들을 이겨내는 인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4일 조세 당국에 따르면 중앙 부처의 세무 공무원들에 7~9급의 하위직으로 출발해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인물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국세청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국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찬욱씨. 박 국장은 조만간 국세청 인사에서 차장으로 승진하게 될 한상률 서울지방국세청장(1급)의 후임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후임 서울청장에는 고시 출신 인사가 물망에 올랐으나 9급 공무원들에게 승진의 희망을 주겠다는 전군표 신임 청장의 의지에 따라 박 국장이 급부상한 상황이다. 박 국장은 지난 68년 9급 공채로 국세청에 입문, 38년여 동안 법인ㆍ조사 등 국세청 주요 부서를 두루 거친 실력파다. 이에 앞서 재정경제부에서는 참여정부 초창기 재산소비세심의관을 거쳐 2004년 4월 전격적으로 세제실장(1급)으로 발탁됐던 이종규 현 코스콤 사장이 ‘세제맨들의 신화’로 아직까지 불리고 있다. 그는 9급 출신으로 출발했으면서도 20년 가까이 새벽4시에 일어나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등 전형적인 일벌레였다. 세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엘리트 고시파들에 둘러 싸여 힘겨운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종합부동산세의 골간을 마련해내는 등 현 정부의 조세 정책을 입안하는 데 상당한 공로를 세웠다. 두 사람을 축으로 중간 간부급에는 하위 공무원 출신으로 실력파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홍성욱 서울청 조사 3국장을 비롯해 재경부 부동산 실무기획단 총괄반장을 거친 박동규 국세심판원 조사관 등도 승승장구하는 인물들이다. 이밖에도 두 기관과 관세청 등에는 차기 세제실장과 청장을 노리면서 분투하는 하위 공무원 출신 인사들이 적지 않으며 비고시파들의 ‘약진’은 점차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권자들도 이 같은 의지에 동참하고 있다. 전군표 청장은 최근 취임사에서 “9급이나 8급에서 출발하더라도 최고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열어가겠다”고 천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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