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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창구 보신주의 확산] 부실땐 퇴출1순위 대출 '꽁꽁'
입력1999-09-10 00:00:00
수정
1999.09.10 00:00:00
신경립 기자
대우 워크아웃을 계기로 2차 은행합병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은행의 일선창구가 꽁꽁 얼어붙었다. 은행합병이 이뤄질 경우 대규모 명예퇴직이 단행될 게 뻔하고 그럴 경우 거래기업이 부도난 은행원들이 1차 대상이라고 판단하는 탓이다. 이에 따라 워크아웃에 돌입한 대우 계열사와 협력업체는 물론 멀쩡한 중소기업까지 자금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다.㈜대우를 통해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A사. 지난 9일 기계설비 구입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안산에 있는 주거래은행의 지점을 찾았지만 『담보가 적으니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받아오라』는 냉대를 받고 발길을 돌렸다.
자동차용 진단기를 생산하고 있는 벤처기업 K사의 L사장은 『대우사태 이후 은행직원들이 더욱 까다롭게 굴어 어음할인에 애로가 많다』고 말한다.
은행원들도 할말이 많다. 『언론에서 2차 구조조정이 진행될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함부로 자금을 돌립니까. 지난번에 당해봐서 압니다. 정부가 아무리 면책해준다고 하지만 부실이 늘어나면 실무자는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습니다.』
대우사태 이후 제조업체들의 자금갈증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감독당국의 면책조치나 은행 상부의 자금지원 독려도 일선직원들의 불안을 무마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금융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차라리 정부가 2차 은행산업 구조조정에 착수, 대우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적자금을 과감하게 투입, 금융기관간 합병을 유도하면서 제조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단행됐던 금융 구조조정이 제조업 구조조정을 거쳐 다시 금융권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구조조정 선(善)순환의 물꼬를 터주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면책을 믿는 은행원은 아무도 없습니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면책조치를 믿고 자금을 풀 사람이 있겠습니까.』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자의 말이다. 그는 『예전에도 비슷한 조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누군가는 음으로 양으로 책임을 지게 돼 있다』고 지적한다.
표면적인 「면책」 조치 덕에 여신취급자가 즉각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면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아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궁극적으로는 여신업체가 무너져 은행이 부실해지면 결국 모든 직원들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우 여신을 줄인 S은행 등 몇몇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잘했다는 칭찬을 듣는 반면 정부의 독려에 따라 대출을 해준 선발은행들은 다시 멍들고 하소연할 곳도 없게 됐다』며 『지금은 면책을 내세우며 자금지원을 독려하지만 일이 터지면 책임은 결국 은행과 은행원에게 돌아올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시중은행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한빛은행은 지난 7일 워크아웃 대상에 오른 10개 대우 계열사를 「지정기업」으로 재선정, 이들 업체의 어음을 갖고 있는 협력업체들이 신용으로 어음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이는 10개 업체를 대우사태 발생 이전의 정상기업으로 간주한다는 얘기다.
한빛은행 여신담당자는 『지난 8월 지정기업에서 제외됐던 대우 계열사 중 10개 업체를 재선정, 각 지점에 이를 통지했다』며 『이 경우 정상적인 상거래에서 발행된 어음할인에 대해서는 부실이 발생해도 책임이 면제되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 계열사의 협력업체에 대한 어음할인은 상당히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무조건적인 면책」이란 있을 수 없다. 어음할인을 받을 수 있는 협력업체도 은행의 기존 거래업체나 우량업체로 제한된다. 게다가 「명백한 환자」를 「건강한 사람」으로 간주해 똑같이 대우하라는 발상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원만 탓하는 분위기가 문제입니다. 은행이 망해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리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한차례의 잔인한 구조조정 태풍을 정면으로 맞았던 은행원들 입장에서는 또다시 몰아칠 칼바람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몸보신」을 하는 것이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형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내년에 2차 합병바람이 불 것이라는 얘기가 직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며 『언제 또 감원바람이 불지 모르는데 위험을 무릅쓰며 국가정책에 동참하려는 직원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지난 상반기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한 「은행 2차 구조조정설」은 이미 은행원들에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몇몇 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예 구체적인 상대은행 이름을 점찍은 합병 시나리오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정도로 합병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제는 은행장들도 구조조정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위성복(魏聖復) 조흥은행장은 『2000년께 은행들간의 자발적인 인수·합병(M&A)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만(金振晩) 한빛은행장도 『시장논리에 따라 한빛이 주도하는 합병기회가 주어진다면 굳이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울은행의 해외매각이 실패한 것을 계기로 2차 구조조정의 전기가 마련됐다』며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규모가 당초보다 크게 늘게 됐다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키고 일사불란하게 합병작업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경립기자KLSIN@SED.CO.KR
한상복기자SBHA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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