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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치창출(CSV)이라는 개념을 만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기업만이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받아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자체만의 성장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의 공존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업체들은 '나눔경영'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핵심 경영전략의 하나가 됐다. 기업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은 그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사회공헌 지출규모는 2조8,114억원에 달한다. 전년도의 3조2,534억원에 비해서는 15.3% 줄었지만 이는 실적악화에 따른 감소일뿐 세전이익 대비 사회공헌 비중은 2012년 3.37%에서 지난해에는 3.76%에 오히려 올랐다. 그만큼 기업들에 사회공헌의 중요성이 높아진 셈이다.
지난 1996년에만 해도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규모는 3,067억원에 불과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1조원대로 성장했고 2008년에 2조원을 넘어섰다. 2011년 이후에는 3조원을 돌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CSV 개념 도입과 함께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기존의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 기업별로도 자신들의 색깔에 맞는 사회공헌 사업을 더 확대하는 중이다.
삼성은 사회공헌에 있어서 선두주자다. 아직 사회공헌에 대한 단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던 지난 1994년 이건희 회장은 신년사에서 "사회공헌은 삼성이 선도 기업으로서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방과 후 학습지원 프로그램인 '드림클래스'에 대한 운영 매뉴얼을 발간하기도 했던 삼성은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LG그룹도 취약계층의 청소년들의 꿈을 실현하는 일을 돕고 있다. 특히 다문화가정 지원하면 LG가 떠오를 정도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여는 것을 포함해 상생경영과 소외계층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 정몽구재단에서도 사회공헌에 나서고 있다.
SK나 효성처럼 지원사업을 통해 '물고기 잡는 법'을 알리는데 주력하는 곳도 있다. 특히 SK는 사회적기업 육성을 그룹의 핵심 지원사업으로 삼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기업이 해답"이라고 했을 정도로 SK는 정부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면서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 사회적기업을 키우고 있다.
기업의 사업영역과 관련된 사회공헌을 하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태양광을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있는 한화는 태양광 시설 기증 같은 사업을 통해 사업 역량도 키우고 사회적 책임도 다하고 있다. KT도 소외지역에 통신기술을 이용해 취약계층을 지원해주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암환자에게 스스로를 가꾸는 법을 알려준다. SK텔레콤과 SK플래닛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스타트업 기업을 키워내는 데 열심이다. 금융그룹인 KB도 저소득층에게 예금금리를 더 주고 대출금리는 낮게 받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두산이나 한진처럼 사회 전체의 미래경쟁력을 높이거나 지구촌 곳곳에 돌봄의 손길을 전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기업도 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포스코는 협력사와의 상생경영에 주력하고 있다.
CJ그룹은 아예 사회적책임경영(CSR)에서 CSV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히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좋은 일도 하면서 돈도 벌겠다는 얘기다.
눈에 띄는 사회공헌 활동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화는 올해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달력을 배포하고 있고 KT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정보기술(IT) 서포터즈를 운영 중이다. 롯데호텔은 중국에서 사막화 방지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LG 직원들은 공부 멘토링 사업을 하고 있다. 효성의 메세나,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오뚜기의 '굿윌스토어(Goodwill Store)' 지원사업도 호평을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사회공헌을 포함한 사회책임 경영을 하면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용우 전경련 사회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좋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보급해 사회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주체가 됐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CSV가 기업들의 새로운 사회공헌 시스템으로 정착돼 나갈 것으로 보인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CSR과 CSV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CSR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한 뒤 이익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지원하는 것으로 금액은 매출의 1% 안팎 수준이다. 반면 CSV는 사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매출액 전체가 CSV 활동액이 된다" 그만큼 CSV의 규모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얘기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지출규모가 일본의 2배가량 된다"며 "기업들이 사회를 위해 펼치는 활동을 제대로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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