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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합소득세 과표구간 상향 조정 검토방침을 밝힌 것은 기존의 소득세제가 낡은 틀에 묶여 변화한 경제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소득세제를 전면적으로 손질할 수 있다는 신호탄으로도 여겨진다.
현행 소득세제는 이자ㆍ배당ㆍ기타소득을 제외한 소득은 모두 종합 과세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ㆍ연금소득ㆍ부동산임대소득을 한데 묶어 세금을 매기고 있다.
이는 지난 1974년 12월 소득세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틀이 잡힌 것인데 세율은 이후 경제여건이나 정치권의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었으나 정작 세율을 적용할 기본금액이 되는 과표구간은 변화가 더뎠다.
종합소득과세 체계 도입 과표구간은 16단계나 됐는데 이 같은 복잡한 체계가 20년가량 유지되다가 전면적인 세법 개정으로 4단계로 단순ㆍ깔끔해졌다.
소득세법 전면 개정으로 한때 70%에 달했던 최고세율이 1996년에는 40%까지 낮아지는 등 일대 혁신이 이뤄졌지만 해당 과표구간은 이후 또다시 정체돼 2007년까지 유지돼왔다. 이렇게 유지된 과표구간은 ▦1,000만원 이하 ▦1,000만원 초과~4,000만원 이하 ▦4,000만원 초과~8,000만원 이하 ▦8,000만원 초과 등 4단계다.
그러던 것이 2008년부터 소폭 상향 조정됐다. 물가상승과 국민 실질소득 향상이라는 거시적인 경제환경 변화를 반영하고 국민의 세부담을 덜어주자는 차원이었다. 이에 따라 새 단장한 4단계 과표구간은 각각 ▦1,200만원 이하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8,800만원 초과 등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정치권이 잇따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며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삼으면서 정부ㆍ학계와 보다 정밀한 논의 없이 갑자기 최고 과표구간 하나가 더 신설(3억원 초과)됐고 이에 적용될 최고세율도 38%로 올랐다.
이에 대해 재정부를 비롯한 세정당국은 상당한 유감의 뜻을 나타내왔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조세체계는 간소화돼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돼야 하는데 과표구간과 세율체계가 갑자기 더 복잡해지는 것은 선진적인 조세정책의 흐름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재정부는 소득세제의 전반적인 틀을 선진적이고 현실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는 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박 장관이 과표구간 상향 이동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아울러 임기 말 들어 정치권의 역풍에 오락가락했던 감세원칙도 관철하겠다는 뜻도 엿보인다. 소득세법은 2008년부터 2009년 개정을 통해 기존의 8~35%였던 세율을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인하해 6~33%로 변경하려 했으나 이후 2009년 일부분이 유보되는 등 부침을 겪었고 현재는 되레 최고세율이 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재정부의 고민은 과표구간 상향 조정이 이뤄질 경우 자칫 면세자들이 늘어나 조세 형평성을 해치고 정부의 재정확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8년 과표구간이 상향 조정되고 나서 이듬해인 2009년의 소득세 세수는 전년(36조4,000억원)보다 2조원 줄어든 34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물론 이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악화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지만 요즘처럼 유럽발 재정위기와 국제유가 불안으로 또다시 경기둔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소득세수 감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과표구간을 전반적으로 손질하더라도 면세점 계층을 늘리지 않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표구간의 최저한선은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아울러 소득세제의 각종 비과세ㆍ감면 조항 중 불요불급한 조항을 점진적으로 축소ㆍ폐지하는 것도 검토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세법 개정은 국회 입법 사항이므로 이 같은 방향으로 정부가 세법 개정을 추진하더라도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재정부는 올해의 경제여건과 정치권의 지형변화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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