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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강국 코리아] 2부. 신기술이 여는 새 시장 <3> 떠오르는 '산업의 쌀'

탄소섬유 자동차 … 우레탄 타이어 … 신소재가 산업역사 다시 쓴다

내마모성 뛰어난 폴리케톤, 금속대체·썩는 플라스틱 등

소재 시장 이끌 뉴 페이스

효성·SK케미칼·태광, 글로벌 시장 공략 잇따라

효성기술원 소속 연구원들이 폴리케톤의 내마모성을 보여주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30분 동안의 마모실험 후 폴리케톤의 비교 소재로 사용한 폴리아세탈의 경우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하얀 가루가 더 많다. /사진제공=효성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효성기술원. 지난해 말 상업화가 이뤄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신소재 '폴리케톤'이 탄생한 곳이다. 폴리케톤 개발은 세계 고분자 소재산업 역사에서 국내 기업이 신소재를 만들어낸 첫 성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폴리케톤이 기존 플라스틱과 무엇이 다른지를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한 연구원은 즉석실험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모성이 뛰어난 플라스틱 소재로 알려진 폴리아세탈(POM)과 폴리케톤에 각각 압력과 회전을 가해 마모 정도를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30분 후 실험장비 밖으로 꺼낸 POM 표면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마모가 진행돼 있었다. 흰 가루도 떨어져나왔다. 반면 같은 조건에서 실험한 폴리케톤은 표면에 마모 자국을 찾기 힘들 정도로 멀쩡했다. 이원 효성기술원 전무는 "현재 나와 있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보다 내구성, 내화학성, 내마모성, 기체 차단능력 등이 뛰어나다"며 "앞으로 고분자 소재시장을 이끌 뉴 페이스"라고 강조했다.

효성의 폴리케톤 개발은 대체소재 개발에 몰두하는 세계 화학업계의 노력과 맥이 닿아 있다. 화학제품 가격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화학업계의 패러다임이 저가생산에서 대체소재 개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화학기업도 친환경성, 내구성 등 기존 소재를 넘어설 만한 기능을 갖춘 대체소재를 개발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폴리케톤만 하더라도 기존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다. 자동차 휠 커버부터 산업기기의 기어, 전자기기 내 커넥터, 자동차 내장재 등이 목표시장이다. 정부 WPM(World Premium Materials) 기획위원회는 폴리케톤의 전후방 파급효과가 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일부 고분자 소재는 금속을 대체하기도 한다. 폴리페닐렌설파이드(PPS)가 대표적이다. PPS는 플라스틱이지만 250도의 온도를 견디고 200도 이하에서는 화학적으로 분해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무게도 가볍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자동차나 전기·전자 등 정밀제품 내 금속 대체소재로 인기가 높다.

지금까지는 도레이나 셰브런, 필립스 등 일본·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었지만 SK케미칼도 울산에 공장을 착공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도레이첨단소재 역시 인천 송도에 대규모 PPS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소재의 변화는 소비자들의 실생활에서도 폭넓게 일어나고 있다. 선두에 있는 소재는 단연 탄소섬유다. 최근 폭스바겐이 국내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주행능력을 선보인 XL1은 연비가 ℓ당 111.1㎞에 달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연비의 비밀은 바로 차체의 소재로 쓴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 XL1의 무게는 795㎏으로 1,400~1,500㎏인 일반 중형 세단의 절반 수준이다.

무게는 철의 5분의1 수준이면서 강도는 10배 이상 강한 탄소섬유의 성질에 따라 이미 자동차뿐 아니라 골프채·자전거 등 다양한 제품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 탄소섬유의 선두주자는 도레이로 도레이의 국내법인인 도레이첨단소재도 경북 구미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국내외 자동차업체 등에 탄소섬유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토종기업인 효성·태광이 도전장을 던졌다. 두 회사는 이미 각각 생산공장을 짓고 세계 탄소섬유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정유사인 GS칼텍스도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한 피치계 탄소섬유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재빨리 탄소섬유 품질 수준을 높여 자동차·항공우주 등 핵심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 열풍도 거세다. 화석연료가 아닌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쓰는데다 일부는 땅에서 썩어 친환경적이다. 이에 기존 플라스틱 대체 흐름이 형성되는 순간 시장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는 것이 학계와 업계의 공통적인 예측이다.

국내에서는 SK케미칼이 '에코젠'과 '스카이그린'이라는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가 없어 유아용품이나 식품 보관용기, 유아용 장난감시장 등에서 대체가 특히 가파르다. 휴비스도 옥수수에서 추출한 성분을 기존 폴리에스터섬유에 첨가한 신섬유를 개발해 시장에 진입했으며 롯데케미칼도 바이오PET를 콜라 용기로 납품하고 있다. 삼성정밀화학도 생분해가 되는 폴리에스테르수지인 '엔폴'을 개발해 시장에서 각광 받고 있다.

꼭 신소재가 아니더라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여는 경우도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미 익숙한 소재인 우레탄을 이용해 고무 타이어를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우레탄 타이어는 공기압 없이 우레탄의 탄성만을 이용한 타이어로 무게가 일반 타이어보다 가벼운데다 공정도 단순하고 펑크의 우려도 없다. 금호석화는 자동차를 넘어 험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산업용 기기나 군수용, 우주산업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첫 작품은 2~3년 내 현대차 레이 전기차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소재 개발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심우석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오플라스틱 등 대체소재 초기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는 1차 소비자인 가공업체가 해당제품을 사용할 경우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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