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영화의 제1미덕은 ‘재미’다. 국제 영화제에서 화려한 레드 카펫을 밟는 영화건, 동네 극장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보는 영화건, 재미가 없는 영화는 그 자체가 관객을 우롱하는 행위다. 문제는 그 재미의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세계 최고 미인들의 이목구비를 합성한 얼굴이 보기 흉하듯, 그간 써먹었던 흥행 공식들만 나열한다고 해서 영화의 재미가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 ‘잠복근무’가 딱 그렇다. 지난 10여년간 충무로 흥행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모두 뒤섞은 영화다. 학교를 배경으로 형사와 조폭이 등장하고, 적당한 액션에 로맨스가 버무려지면서 우정까지 양념으로 곁들여져 있다. 주인공은 최근 톱스타로 급부상한 김선아. 이 쯤 되면 재미가 없는 게 신기한 일이다. 영화는 다혈질 여형사 재인(김선아)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삼촌인 천반장(노주현)으로부터 여자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이 학교엔 폭력조직 소탕을 위한 중요한 증인 영재(김갑수)의 딸 승희(남상미)가 다닌다. 학창 시절 주먹이나 쓰던 재인에게 학교 생활은 지옥 그 자체. 학교 일진들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구박이나 듣는다. 정작 친해져야 하는 승희에겐 말 한마디 붙이기가 무섭다. 덤으로 매력 만점의 같은 반 남학생 노영(공유)까지 등장한다. “영화는 애당초 앞뒤가 맞아야지”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진작에 이 영화를 피해야 한다. 상황 논리를 따지고 들면 한이 없다. 경찰이라는 소재에 걸맞지 않게 액션은 어설프기만 하고 곳곳에 장치된 유머 역시 관객들의 허무감을 자극하기에 이른다. ‘예고편에 나온 게 전부’라는 말은 이 영화에 딱 들어맞는다. 충무로에서 힘 깨나 쓴다는 조연들 역시 이 영화에선 하염없이 무너진다. 안방극장 시트콤에서 새로운 코믹 이미지를 선보인 노주현은 백전노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모습만 보여준다. 공유, 남상미 등 신세대 스타들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나마 김선아의 고군분투만이 위안거리. 올해 서른의 고개를 넘은 이 여배우는 발음 부정확한 CF요정에서 홀로 영화를 이끌 수 있는 ‘원톱’으로 성장했다. 그녀만의 귀여운 표정과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은 ‘파리의 연인’ 김정은의 대를 잇는 차세대 코믹스타로서 입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17일 개봉.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