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416호 중법정 앞. 시계 바늘이 2시를 가리키자 나이 지긋한 60~70대 노인들이 하나 둘씩 법정으로 들어섰다. 이들 대부분은 2011년 1월 25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중국고섬공고유한공사(이하 중국고섬)에 목돈을 투자한 투자자. 이들은 중국고섬 사태가 지난 2011년 법정분쟁으로 비화한 뒤 마지막으로 열리는 재판에 참가하고자 모였다.
중국고섬 투자자 모임이 2011년 9월 말 한국거래소를 비롯해 상장 주관회사인 대우증권ㆍ한화투자증권, 회계감사를 한 한영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19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에 나선 지도 어언 1년 3개월이 지났다. 법정에 참가한 투자자들의 얼굴에는 그 동안 겪은 고통의 흔적과 피곤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중국고섬 사태는 지난 2011년 3월 21일 싱가포르거래소(SGX)가 중국고섬의 주권매매거래를 중단하면서 시작됐다. 중국고섬은 전날 주가가 24% 떨어지자 추가 하락을 우려해 거래 중단을 요청했다. 하루 뒤인 22일 한국거래소는 주식예탁증서(DR)로 상장돼있는 중국고섬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24일에는 중국고섬 자회사가 갖고 있던 은행예금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당시 공시에 따르면 중국고섬 감사위원회는 회계감사법인인 언스트앤영(E&Y)에 광범위한 감사를 요청했고 언스트앤영은 의견거절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25일에는 SGX에서 매매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매매거래중단(Trading halt)에서 상당기간 정지되는 매매거래정지(Trading suspension)로 바뀌었다.
이번 법정소송의 쟁점은 한국거래소 등에 한국고섬의 상장에 대한 책임을 물릴 수 있느냐의 여부다. 한국거래소는 거래정지 당일 늑장 대응했는지, 대우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증권신고서 허위 또는 부실 기재, 부실한 실사조사 등의 책임이 있는지가 쟁점이며 한영회계법인은 2007~2009년 3년치 중국고섬의 회계장부에 대해 감사를 진행한 뒤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한국거래소에 전달한 게 문제다.
소액주주들은 "현지 공장을 방문한 결과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중국고섬이 고기능성 원사를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며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IPO가 추진됐고 이에 대한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주관회사와 한국거래소 등에 책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측은 "SGX에서 거래정지 사실을 알려온 뒤 즉각 조치에 나섰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물 건너 나라 밖 SGX에서 거래정지 등 조치 사항이 전달되자 마자 한국거래소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는 얘기다. KDB대우증권과 한화투자증권 측도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를 믿고 일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상장 과정에서 독립적인 전문가 집단인 대형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등 외부 자문회사를 선임해 적절하고 충분한 기업실사에 나섰지만 주관회사가 아닌 외부 문제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도출됐다는 것이다.
이날 공판은 최종 선고기일을 2월15일로 정하며 15분여만에 완료됐다. 투자자들이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지 않으면 사실상 한푼도 찾지 못하고 중국고섬 주식은 휴지로 변한다. 그나마 정리매매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해 4월 열린 상장위원회에서 중국고섬의 퇴출 여부 판단을 미루고 앞으로 심의를 계속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중국고섬이 상장돼있는 SGX가 퇴출이냐, 잔류냐를 결정한 뒤 상장위원회를 다시 열고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거래소 측 관계자는 "사실상 중국고섬은 상장폐지가 확정된 상태"라며 "SGX가 여전히 거래정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거래소가 앞서 퇴출을 결정해 정리매매에 돌입할 경우 국내 투자자의 손실만 초래할 수 있어 상장폐지 결정을 미뤘다"고 설명했다.
이날 법정에서 만난 한 80대 노부부는 "단 1,000만원이라도 사기를 치면 구속되는 데 2,000억 원 가량의 공모자금을 얻은 뒤 '나 몰라라' 하는 중국고섬 측 대주주 등은 편히 발 뻗고 자고 있을 것"이라며 "주관회사인 KDB대우증권이나 한국거래소 모두 중국고섬이 퇴출되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상장폐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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