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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단자함은 ‘범죄 정보함’
입력2004-01-12 00:00:00
수정
2004.01.12 00:00:00
이준택 기자
11일 서울 신림동 G아파트. 각 층 계단마다에 열쇠 잠금 장치로 닫혀있는 전화단자함은 `누름`버튼을 누르자 저절로 열렸다.과자 봉투 등 각종 쓰레기가 쑤셔 박힌 단자함의 내부도 손쉽게 드러났다. 인근 아파트 단지 K타운의 사정도 마찬가지. 손쉽게 열린 단자함 안에는 각 호수별 전화선번과 가입자선번이 기재된 A4 용지가 붙어있었다. 아파트 주민 황모(43ㆍ여)씨는 “단자함을 열쇠 등 비상 물품 보관소처럼 활용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빌라, 다가구 주택 등의 외부 전화단자함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전화번호 등 각종 통신정보를 악용하는 지능범죄꾼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명 인터넷업체에서 퇴사한 이모(27)씨는 지난달 22일 통신회사 직원을 사칭, 서울 신정동 M아파트의 주통신실(MDF)에서 한 시간 만에 300여 세대의 전화번호를 입수했다. 통신 기술자였던 그가 전화국 송신장비를 단자함에 연결한 뒤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자 휴대폰 액정화면에 해당 호수의 전화번호가 나타났다.
세대별 인터넷 설치 유무까지 파악한 그는 주부만 혼자 있는 집에 미리 전화를 걸어 인터넷 무상수리 예약 방문을 약속한 뒤 찾아가 이 달 초까지 L(35)씨 등 주부 5명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다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초 무단 도용한 전화번호로 인터넷 게임사이트의 사이버머니를 구입해 2,700여만원을 챙겼던 군 통신병 출신의 배모(28ㆍ구속)씨 등 2명도 전화단자함을 이용해 무려 1,670가구의 전화번호정보를 입수했다. 통신회사 조끼를 입고 회선 점검을 위장한 이들이 잠겨있지도 않은 단자함에서 전화번호를 해킹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단자함에서 전화번호를 빼내는 일은 간단한 통신 설비 지식만 있으면 전화 통화만큼 간단하다는 것이 업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 단자함 설치업체인 K통신의 관계자는 “전화국 직원들이 사용하는 테스트기를 용산전자상가에서 20여만원이면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단자함 내부에 기재된 할당 선번만 봐도 굳이 테스트를 안 해도 번호 유추가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전화 단자함의 보호 등을 위해 `주택공사표준시방서` 등 시공 지침에는 단자함의 잠금 장치 및 자물쇠 걸이 부착이 규정돼 있지만 실제 지켜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파트 거주자 서모(33)씨는 “대다수 아파트, 빌라의 중간 단자함은 잠겨 있어도 발로 차면 열리는 등 허술하기 짝이 없다”며 “단자함 보안을 법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택 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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