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감우성(35)에게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과장하지도 않고 과분한 평가를 탐하는 법도 없다.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말없이 순응한다.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나 억울한 평가에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이 대중의인기에 기대어 사는 배우인지 오직 제품으로만 이야기하는 장인이지 구분이 안 될때도 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감우성을 만났다. 그는 29일 개봉예정인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에서 광대 장생을 연기했다. 13일 열린 기자 시사회에서 '왕의 남자'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광대인 장생과공길(이준기 분)의 슬픈 운명과 아름다운 우정에 객석은 눈물과 박수로서 화답했다.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감우성도 이 영화에 만족하고 있었다. 자신의 출연작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평했다. "'왕의 남자'를 만난 것은 저에게는 의미가 깊습니다. 앞으로 '왕의 남자' 이상의 시나리오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우성은 '왕의 남자'에 대해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에 기대지 않고 사람이 감동을 전달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사극 연기가 처음인 그가 장생을 연기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스스로 "난 사극에 어울리는 배우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감우성은 이 영화에 관심조차 없었다고. "장생 역할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감독이 이 배역을 꼭 저에게 맡기고 싶어하는지도 궁금했구요." 그는 "내가 꼭 장생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고 싶어 '공길 역할에 관심이 있다'며 감독의 의중을 떠봤으나 '공길 역할은 맡길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배역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감우성은 "항상 내 판단에 따라 행동했는데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내 판단보다 타인의 평가가 옳을 때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눈을 감고도 외줄 위에서 묘기를 선보이는 타고난 재주, 풍자와 해학의 멋을 아는 천상 광대인 장생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광대들이 선보이는 연극과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외줄타기와 창(唱), 꽹과리 등을 배웠다"면서 "훈련기간이 두 달이었는데 절실하면 다 되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장생을 연기한 뒤 좋은 배역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좋은 영화에 대한 갈증을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으로 표현했다.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다"는 감우성. 그는 "그때는 많이 부족했다"고 술회했다. 감우성은 "외모도 연기력도 노쇠할 수 있다"면서 한국의 영화제작 시스템에서 남자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음도 아쉬워했다. "매번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연기에 임한다"는 말은 그가 얼마나 연기를 오래 하고 싶어하는지를 반증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